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성기철칼럼

[성기철 칼럼] 국정원을 제대로 개혁하려면

[성기철 칼럼] 국정원을 제대로 개혁하려면 기사의 사진

“국내정보와 대공수사권 폐지는 비현실적… 국회에 의한 통제는 강화 필요”

장성택 실각이 북한 당국에 의해 공식 확인된 9일,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얼굴엔 희색이 가득했다. 대선 개입 의혹으로 꼬박 1년 동안 야당의 뭇매를 맞아 온 국정원이기에 직원들은 모처럼 활짝 웃을 수 있었다. 김정일 사망 사실을 북한 발표 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2년 전 불명예를 함께 씻어냈다며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국정원의 한 IO(정보공무원)는 복잡한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국정원 첫 ‘발표’에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있었겠지만 정확한 정보에 근거한 것이기에 우리는 자신했습니다. 아무튼 국민들에게 체면이 서게 돼 다행입니다. 1년간 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쑥 내려가는 기분입니다. 국민들이 국정원을 신뢰하는 계기가 됐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공교롭게도 국정원의 잔칫날일 수도 있는 이날 국회에선 국정원개혁특별위원회가 출범했다. 국정원이 중앙정보부란 이름으로 창설된 지 52년 만에 처음으로 정치권이 집도하는 외과 수술대에 오른 셈이다. 특위는 내년 2월까지 개혁안을 마련해 입법을 마칠 계획이다.

정치권이 여야 합의로 칼을 잡은 이상 수술은 불가피하다. 국정원이 수술 대상이 된 것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대선 때 직원들이 정치 편향성 댓글을 많이 단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국정원은 조직적 개입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검찰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사법부 판단을 기다려 봐야겠지만 최고 수사기관이 원세훈 당시 원장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했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국정원이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죄를 지었다고 해서 국가 최고정보기관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금물이다. 힘을 빼는 것이 개혁일 수는 없다. 21세기 국내외 정보 환경이 참으로 엄중하기에 하는 소리다. 국가안보 위협의 주체가 다양화하고, 안보위협 요소의 초국가화, 위협 수단의 첨단화·지능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국정원은 정보 수집 및 분석 역량을 한층 키워야 한다. 개혁이란 명분으로 정보기관의 조직이나 예산을 줄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자칫 국정원의 경쟁 상대인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와 미국 CIA(중앙정보국), 중국 국가안전부, 일본 내각정보조사실에 좋은 일 시켜주는 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민주당이 내놓은 개혁안을 보면 아무래도 걱정스럽다. 국내정보 파트와 대공수사권 폐지가 그것이다. 국정원으로 하여금 북한 및 해외 정보에 치중하고 국내정보에서 손을 떼게 하는 것이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북한이 간첩 남파, 사이버 해킹, 원전테러 위협 등 다양한 형태의 도발을 시도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정당이나 정치·사회단체 관련 정보 수집을 못하도록 하는 것은 종북 세력을 돕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처럼 북한 주장에 동조하거나 추종하는 세력이 정당이나 사회단체 울타리 안에 숨어 있으면 적발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공·방첩 활동이 국내정보 수집을 토대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대공수사권 폐지 또한 현실에 맞지 않는다. 간첩이나 스파이 수사는 해외 우회 침투나 접선 등 나라 안팎을 넘나들어야 하기 때문에 검찰이나 경찰에 맡기기 어렵다. 단순히 간첩의 검거에 그치지 않고 이들을 포섭하거나 역이용하는 공작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아 해외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는 국정원이 계속 수행하는 게 옳다.

다만 이왕에 국정원 개혁이 도마에 올랐으니 국회에 의한 통제를 강화할 필요는 있다. 국정원은 일반 정부부처와 달리 국회에 예산 총액만 제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구체적인 내역을 제출할 경우 비밀공작 내용이 새나갈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라는데 시대 환경에 맞게 적절히 조정할 필요가 있다. 국정원장이 기밀임을 내세워 감사원 감사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한 특례도 차제에 손질하는 게 옳다. 국정원의 정치·선거 개입을 막을 수 있는 여타 제도적 장치는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나쁘지 않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