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조성돈] 이해와 감동의 리더십 기사의 사진

리더십이 변하고 있다. 과거 좋은 리더십은 그가 속한 집단을 하나로 뭉치게 하여 더 효율적으로, 그리고 성과위주로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집단의식이 크게 역할을 했다. ‘우리’라는 집단의식이 힘을 내서 으쌰으쌰 하는 것이다. 경부고속도로가 그렇게 만들어졌고, 수많은 우리 산업인프라가 다 그렇게 만들어졌다.

과거 리더십은 바로 이러한 집단의식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때로는 공포와 협박으로, 때로는 성과에 맞는 보상으로 이러한 의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군대의 리더십이었다. 전투적 상황을 전제로 하고 부대원들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하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런데 익숙한 우리는 삶의 모든 부분에서 전투적으로 살았다.

일사불란한 문화 사라져야

이러한 군대의 리더십 형태나 그 문화는 아직 대한민국에서 유효하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예능프로그램도 연예인들이 1주일간 군대에서 겪는 일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대한민국이 군대문화에 대한 동경 내지는 친밀함을 가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문화 외에 교회 내에서도 이런 군대문화가 깊이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군사용어들이 교회 내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예를 들어 교회에 보면 다양한 특공대들이 있다. 기도특공대, 전도특공대 등이다. 기도를 해도, 전도를 해도 특공대가 되어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같이 교회 내에서도 자연스럽게 군사용어를 사용하고, 군대식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이러한 집단주의 내지는 군대식 문화가 잘 안 통한다. 학교의 아이들을 보면 우리 때와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선생님에게 활발하게 질문도 하고,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데 거리낌이 없다. 혹여 선생님이 부당하게 하여 자신에게 불이익이 오기라도 하면 자기주장을 하며 따지는 것도 어려워하지 않는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현재 이 사회의 20대 내지는 30대까지 이르고 있다. 철없는 아이들이 아니라 이미 이 시대의 중추로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상명하복을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다.

집단주의 하에서 리더는 ‘나를 따르라’를 외치면서 전선을 뛰어나가는 사람이었다. 그의 솔선수범에 부하들은 ‘우리 의식’에 목숨을 걸고 뛰어 나갔다. 그런데 요즘 이러한 솔선수범은 젊은 사람들에게 종종 비웃음거리가 된다. 이유도 없고 방향도 없이 씩씩거리는 리더를 보면서 젊은이들은 팔짱을 끼고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율법보다 사랑으로 감싸길

요즘 목회자들을 만나면 교인들이 모이기를 힘쓰지 않고, 교회의 일에 헌신하지 않는다고 한탄을 한다. 이 시대가 이제 모이기를 힘쓰지 않는 세대가 되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보면 항시 이렇게 모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이슈가 있을 때면 젊은이들은 기꺼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인다. 때로 별 의미도 없는 것 같은 21인용 군용천막을 한 사람이 칠 수 있는가 하는 내기에 모두가 열광하고 모이기도 한다. 때론 사람들의 관심이 모일 때 모금운동이 크게 일어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이 세대는 모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여야 할 이유를 못 찾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사회학자들은 이 세대를 ‘참여세대’라고 하지 않던가.

이제 이 시대의 참된 리더십은 솔선수범이 아니라 이해와 감동과 재미를 줄 수 있는 리더십이다. 그것은 율법의 리더십이 아니라 사랑의 리더십이다. 주님이 성찬을 나누며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신 것과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리더십이어야 한다. 바라기는 한국교회에, 그리고 이 사회에 이러한 리더십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리더들이 일어나기를 고대한다.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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