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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만 칼럼] 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힘

[임순만 칼럼] 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힘 기사의 사진

“작은 것이 옹골찬 힘을 갖는 것을 보여준다. 세부단위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책 두 권을 두 달 동안 여태 다 읽지 못하고 있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캐나다 여성 작가 앨리스 먼로의 단편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과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이다. 소설 두 권을 놓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수록된 작품들이 빨리 읽을 필요가 뭐 있냐고, 천천히 어쩌다 단편 한 편씩 읽어도 그만이라고 말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먼로의 작품은 속도감도, 극적인 흥미도 없다.

그러나 책상 위에서 그의 책을 치우지 않고 주말 밤에 한 편씩 읽어보는 것은 그의 작품을 읽고 나면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과거와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한림원이 노벨문학상 역사에서 이례적으로 단편작가를 선정한 이유를 곱씹어보게 하기 때문이다.

작품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에 맨 처음 실린 ‘작업실’은 전업주부인 여성이 월세 25달러짜리 사무실을 얻어 글을 쓰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편안한 집을 놔두고 상가의 빈 사무실을 하나 얻어 통상적인 근무시간에는 사무실을 사용하지 않고, 주로 주말이나 평일 야간에 가끔 사용하는 작업실. 그것도 딱히 써야 할 무엇도 없는 상태에서 우두커니 앉아 벽만 바라보며 글쓰기를 시도하는 이야기다.

그런 주인공에게 찾아오는 영감이 하나 있다. 월세집 주인인 영감은 전구를 돌려 빼는 법과 라디에이터와 창문 바깥에 설치된 차양 사용법 따위를 알려주겠다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말을 시킨다. 처음에 독자들은 우호적이거나 어떤 미묘한 관계가 설정되는 것으로 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관계는 엇나간다. 시간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다고 여자가 아무리 옹골지게 굴어도 영감은 무슨 구실로든지 찾아와 자신이 겪은 돼먹지도 않은 별의별 얘기를 늘어놓는다.

날이 갈수록 영감과 여성은 적대적인 사이가 되고, 건물 사용 등에 관련된 사소한 시비가 자주 빚어지면서 여성은 건물을 떠난다. 방을 빼는 날 영감의 아내가 찾아와 짐 싸는 일을 거들어준다. 그리고 말한다. “남편은 누워 있어요. 몸이 좋지 않아서요.” 이 말에서야 독자는 그 영감이 이 서사의 주인공임을 깨닫는다.

낑낑거리며 건물을 청소하고, 세입자에게는 기이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참견을 하고, 세상의 온갖 믿음과 배신의 스토리를 머릿속으로 짜내는 남자. 우리가 이따금 동네 상가에서 만날 수도 있는 영감태기의 모습이 핍진하다. 작가는 그 거리를 적절하게 유지한다. 연민으로 가지 않고 인간에 대한 분노를 우울함으로 바꾼다. 중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일이 ‘일어나는 방식’이다.

먼로의 소설은 대부분 그런 힘을 갖고 있다. 그에게서 남다른 사상이나 유행의 감각을 찾아볼 수는 없다. 캐나나 온타리오 주의 시골마을에서 자라나 학교를 다녔고 결혼해서 그곳에서 작품을 썼다. 배경은 다 그런 작은 마을의 보통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캐나다 최고의 문학상인 ‘총독문학상’을 세 번이나 받았고,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단편작가가 되었다. 지난 10일에는 스톡홀름에서 노벨상 시상식이 열렸다. 먼로는 건강상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수상 연설은 6개월 이내에 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의 연설을 듣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문학과 사회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아직도 세부 단위와 낮은 것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온통 큰 것을 지향하는 일색이다. 그러나 큰 것 위주로 굴러가는 사회는 누군가를 억압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회에는 상당한 거품이 끼어 있고 비문명적 요소가 지배적인 힘을 갖기 때문이다. 작은 단위에 의해서만이 진정 큰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영미(英美)문학은 있어도 캐나다문학은 없는 세상에서 먼로는 온타리오 주의 시골마을에서 혼자 글을 써서 세계의 독자들을 그곳으로 끌어들였다. 그것도 문학시장에서 별다른 주목을 하지 않는 단편으로 말이다. 그에게 있어 세계의 주변부인 자신의 거처는 자존의 중심부일 것이다.

편집인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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