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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김준섭] ‘평화국가’의 황혼

[글로벌 포커스-김준섭] ‘평화국가’의 황혼 기사의 사진

지난 10월 27일의 일본 자위대창립기념일 행사는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4000여명의 자위대원과 240량의 차량, 50기의 항공기가 동원된 그날 아베 신조 총리는 연설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에 관한 법적 기반을 검토하겠다고 말하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표명했다.

그로부터 1개월이 조금 지난 12월 6일 심야, 의회를 둘러싼 데모군중들이 ‘특정비밀보호법 절대 저지’라는 구호를 외치는 가운데 기밀을 누설한 민간인에게 최고 10년의 징역형을 가할 수 있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특정비밀보호법안이 성립되었다. 이런 광경들을 TV에서 보면서 필자는 ‘평화국가’ 황혼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평화국가’라고 부르고 있다. ‘평화국가’는 패전 후 미 점령군에 의하여 초안이 만들어진 일본국헌법(소위 ‘평화헌법’)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 ‘평화헌법’의 밑바탕에는 침략전쟁의 역사가 가로놓여 있다. 교전권과 군비를 포기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는 헌법9조는 ‘평화헌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일본이 더 이상 침략전쟁을 벌일 수 없도록 족쇄를 채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랫동안의 전란에 지친 일본 국민들은 이 족쇄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1947년의 중학교1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은 ‘평화국가’ 여명기의 분위기를 잘 말해주고 있다. 즉 이 교과서에는 전력(戰力)의 포기에 대하여 “여러분 결코 불안해할 일이 아닙니다. 일본은 옳은 일을 다른 나라보다 앞서서 행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옳은 일만큼 강한 것은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평화국가’의 원형(元型)은 그리 오래지 않아 변형되기 시작한다. 1950년 6·25의 발발과 함께 경찰예비대가 만들어지고, 1952년 보안대, 1954년 자위대가 성립되면서 일본은 실질적인 군대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일본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비약적으로 군사비가 늘면서 ‘평화국가’의 모습은 급격히 일그러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9조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대한 방어로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전수방위’의 원칙은 지켜져 왔으며, 일본의 자위대가 해외에서 군사활동을 한 적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자 ‘평화국가’에서 완전히 탈피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세계질서의 유지에 일본이 군사적으로 공헌을 해야 한다는 오자와 이치로의 ‘보통국가론’이 대표적인 것이며, 실제로 일본은 그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1996년의 미·일안보공동선언을 시작으로 1997년 미·일신가이드라인의 성립, 1999년 주변사태법의 성립, 2001년의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의 성립 등에 의해 일본은 해외에서 미군에 대한 병참활동을 일상적으로 행하는 등 ‘평화국가’는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작년 12월에 ‘평화국가’를 완전히 종식시키려고 하는 아베 신조가 총리에 취임했다. 아베 총리는 이미 국가안전보장회의(일본판 NSC)관련 법안과 특정비밀보호법을 성립시킴으로써 국가권력을 강화했으며, 내년에는 헌법 해석의 변경에 의해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가능하도록 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군비의 포기를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던 ‘평화국가’의 원형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위하여 공격용 무기들을 구비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평화국가’가 황혼기를 지나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나면 새로운 일본이 여명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헌법9조의 족쇄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이 낯선 일본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지금부터 깊이 생각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김준섭 국방대 교수·안보정책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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