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한승주] 내 생애 최고 순간 ‘어바웃 타임’ 기사의 사진

만약 나에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시간여행을 소재로 인기리에 상영 중인 영국영화 ‘어바웃 타임’은 거창하게 말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로 돌아가 아돌프 히틀러를 암살하거나, 몇 주 전으로 돌아가 로또 1등에 당첨되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소소한 것들이다. 예를 들면 어젯밤 키스할까 말까 고민하다 거부했던 그녀 앞으로 다시 돌아가 이번엔 키스를 하는 것! 방금 전으로 돌아가 친구에게 내뱉은 말실수를 돌이키는 것.

스물한 살, 자기 집안 남자들에게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 주인공은 그 능력으로 여자친구 만들기에 힘 쏟는다. 하지만 어떤 순간을 다시 살게 된다고 해서 일이 뜻대로 술술 풀리는 건 아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묻는다. “아버지는 이 능력으로 무엇을 했느냐”고. 아버지는 말한다. “나는 읽고 싶은 책을 두 번, 세 번씩 보곤 했지.” 죽음을 앞둔 아버지는 아들에게 행복의 비법을 알려준다. “이 능력으로 하루를 두 번 살아 보라”고.

첫날에는 마음이 조급하고 짜증이 나지만, 두 번째는 똑같은 상황인데 괜히 여유가 생긴다. 작은 기쁨도 더 기뻐할 수 있게 되고,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상황도 행복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긍정의 힘이 생긴다. 처음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일상의 행복과 아름다움을 찾게 된 것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평범한 삶의 소중함’일 것이다. 폭우로 엉망진창이 된 결혼식 피로연이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하게 느껴지고, 아버지가 어린 아들과 산책하던 바닷가로 마지막 시간여행을 떠나는 장면에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어바웃 타임’은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名家) 영국의 ‘워킹 타이틀’이 제작한 리처드 커티스(57) 감독의 은퇴작이다. ‘러브 액추얼리’(2003)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 ‘노팅 힐’(1999)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1994). 그가 각본 또는 연출을 맡은 작품은 따뜻하다. 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가슴에 오래 남는 명작들이다.

그는 왜 하필 지금 은퇴를 선언했을까. ‘어바웃 타임’의 영국 개봉 당시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러브 액추얼리’를 쓰는 동안 가족 3명을 잃었다. 그러면서 무엇이 진정한 삶의 행복인지, 내가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어바웃 타임’의 바닷가 장면에 대해 이런 말도 했다. “해변에서 촬영하던 어느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날은 정말 더웠던, 하늘의 해가 유난히 반짝 빛나던 화창한 날이었다. 다음에는 감독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리처드 커티스로 이 해변을 걸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의 연출작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지만, 그의 새로운 선택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올 한 해, 우리 모두 잘 버텨 왔다. 상처도 받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 세상이 살 만하고 기댈 만한 것은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나를 진정 걱정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우리의 평범한 삶을 지탱시켜주는 그들 말이다.

영화는 이런 대사로 끝맺는다. “인생은 매일매일 사는 동안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여행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남은 한 해 잘 마무리하고, 2014년에는 모두들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시길!

한승주 대중문화팀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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