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지순] 통상임금 판결 이후의 과제 기사의 사진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태풍이 다행히 큰 후유증 없이 지나가는가 했지만 특급 태풍이어서 그런지 그 잔해가 여기저기 드러나고 있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임을 인정한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그동안 논란이 됐던 통상임금의 범위에 관한 일응의 기준이 마련됐다는 점과 신의성실 원칙을 기초로 근로자 측의 과거 3년 치 소급적 추가임금 청구를 배제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 둔 것은 노동계와 재계 입장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합리적으로 조정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수긍할 수 있다.

그렇지만 고정성을 중심으로 통상임금의 범위에 관한 대법원 해석 기준이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고, 소급분에 대한 청구 제한이 언제까지 인정될지, 또한 향후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 간 임금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여 노사관계의 혼란이 예상된다.

특히 정기상여금을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게 되면 기업의 급격한 추가 부담 발생이 예상돼 경쟁력이 약화되고,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의 정기상여금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소득 양극화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과거 3년 치의 소급분 청구를 제한하는 근거가 노사 합의인데 노사 합의의 존재가 명확하지 아니한 중소기업에서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해 소급분 청구를 제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에서 중소기업의 과도한 추가 부담 문제가 현실화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같이 대법원의 판결은 통상임금에 관한 노사 간 전쟁을 일시적으로 중지시키는 휴전협정일 뿐이며 판결 이후 통상임금 소송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대법원 판결 이후 이뤄지는 노사 합의는 더 이상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종전 노사 합의의 유효기간을 둘러싸고 개별적 소송 분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적 해석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노동계는 즉각 기존 노사 합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임금협상을 요구할 것이며, 기업 측은 점진적인 이행을 원할 것이기 때문에 지루한 노사 간 교섭이 이어지고 그 결과 다시금 거액의 추가임금 소송으로 이어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제는 이 문제에 관해 항구적인 노사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 평화협정을 준비해야 한다. 통상임금 소송의 구조적 원인은 우리 기업의 복잡하고 비합리적인 임금체계에서 비롯됐다. 정기상여금의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고 복리후생적 급여가 다수 존재하는 상태에서 근로자의 노동 가치가 얼마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비정상적 임금체계를 그대로 둔 채 정기상여금만 통상임금에 포함시킨다면 적어도 10%에서 기업에 따라서는 심지어 20% 임금인상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 있다. 매년 평균 3% 정도 임금인상이 이뤄지는 현실에서 대기업 정규직 중심으로 3배, 4배 이상의 임금인상이 이뤄진다면 그것이 우리 국민경제에 어떤 부작용을 발생시킬지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임금인상이 현실적인 경영성과와 실질 생산성을 반영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임금체계 개선이 평화협정으로 가는 필수적인 전제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연공형 중심의 복잡한 임금체계를 성과 및 생산성과 임금이 연계되는 임금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임금체계의 합리적 개편은 통상임금 제도 개선과 연계돼야 한다. 통상임금 제도 개선이 임금체계 개편의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분규를 조장하거나 소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노·사·정의 즉각적인 사회적 대화를 통해 통상임금을 둘러싼 소모적 갈등과 분쟁을 해소할 수 있는 노사 간 평화협정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박지순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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