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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의 재발견] 골칫덩이 빗물… 이젠 雨水자원

[빗물의 재발견] 골칫덩이 빗물…  이젠 雨水자원 기사의 사진

함박눈이 내린 지난 19일 오후. ‘빗물박사’로 유명한 한무영 교수는 이날도 어김없이 서울대 35동 건물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교수가 찾은 곳은 지난해 9월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설치한 옥상정원 ‘마이가든’. 봄, 여름, 가을 동안 계절 특유의 색깔로 물들었던 정원은 하얀 눈으로 뒤덮여 다시 봄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늘 닫힌 공간이었던 옥상은 ‘마이가든’으로 인해 올 한 해 동안 하루에도 30∼40명의 학생들이 찾는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지난달 15일에는 마이가든에서 재배한 배추 250포기로 김치를 만들어 관악구 주민들과 나누기도 했다.

◇빗물을 모으자…와플식 분산형 빗물관리=총 840㎡(255평) 규모에 조성된 이 정원의 출발은 ‘빗물을 버리지 말고 모으자’라는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건물에서 유출되는 빗물을 줄여 홍수를 예방하자는 연구의 일환이었다. 한 교수는 빗물을 모으는 최적의 장소로 옥상을 택했다. 한 교수는 “빗물이 처음 닿는 옥상이야말로 빗물을 모으는 최적의 장소”라며 “빗물 마일리지가 ‘0’인 옥상은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고 말했다.

마이가든의 시공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20㎝ 정도 높이로 경계석을 세우고 방수처리를 한다. 그 다음 하중을 고려해 플라스틱 배수판을 설치하고 흙을 덮으면 끝. 이러한 공정을 거치는데 지난해 겨울 추운 날씨 속에서도 열흘이 채 안 걸렸다. 간단한 공사를 통해 마이가든은 170t의 자체 저류량을 보유할 수 있게 됐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옥상 표면온도가 낮아지면서 건물 에너지 소비가 줄었다(그래프 1, 2). 마이가든 설치로 단위면적당 약 153.9Wh의 소비에너지가 절감됐고 한 달에 21만원 정도의 전기세를 아낄 수 있었다. 한 교수의 현재 꿈은 서울대 220개 모든 건물 옥상에 마이가든을 설치하는 것이다. 그가 늘 강조하는 ‘와플식 분산형 빗물관리’의 연장선이다.

와플은 표면이 격자 상태로 돼 있어 꿀을 뿌려도 격자 구조가 액체의 흐름을 막아주기 때문에 흘러내리는 꿀의 양은 매우 적다. 마찬가지로 개인이든 공공이든 각자 빗물이 떨어진 자리에서 소규모로 빗물을 모아두거나 땅속에 침투를 시키면 전체적으로 내려가는 빗물의 양이 적어지기 때문에 커다란 시설을 만들지 않고도 큰비에 대비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교수는 “서울대 220개 건물 옥상마다 마이가든을 설치하면 3만7400t의 저류조가 생긴다”며 “이는 현재 서울시가 빗물에 의한 도림천 범람을 막기 위해 서울대 정문 앞에 공사 중인 4만t짜리 저류조와 거의 같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밑(지하 저류조)에서 집중형으로 빗물을 모으는 것보다 위(옥상녹화 저류조)에서 분산형으로 모으는 것이 수질 면에서, 그리고 에너지 절감 면에서 훨씬 경제적”이라고 강조했다.

◇빗물은 쓰레기가 아닌 자원…도시계획 단계에서 치수 우선해야=빗물에 대한 그동안의 기본 개념은 쓰레기와 마찬가지였다. 내리는 즉시 최대한 빨리 배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빗물이 잘 빠져나가지 않고 고여 질척해진 거리는 현대 도시의 모습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 빗물 관리에 대한 일반적 ‘상식’이었다.

하지만 한 교수는 “빗물을 버리는 도시(drain city)에서 빗물을 모으는 도시(rain city)로 만들어야 된다”고 말한다. 도시계획 단계에서 건물을 지을 때 가장 먼저 치수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빗물은 쓰레기가 아닌 자원이기 때문이다. 빗물을 이용하면 홍수 방지뿐만 아니라 수자원 활용, 비상시 이용, 에너지 절감 효과 등의 장점이 있다는 논지다.

이러한 그의 빗물 철학이 담긴 대표적 결과물이 서울 자양동의 ‘스타시티’다. 상습 침수구역이었던 이곳은 스타시티가 건설된 후 한 번도 침수되지 않았다. 비결은 건물 지하에 있는 3개의 빗물 저장조다. 스타시티는 B동 건물 지하 3층 밑에 한 층을 더 파서 3000t의 빗물 시설을 만들었다. 이를 세 구역으로 나눠 하나는 홍수 방지용으로 비워두고 다른 하나는 입주자 공동 조경수로 사용한다. 스타시티는 한 달 평균 3460t의 상수를 빗물로 대체하고 연간 5000만원의 수도세를 절감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는 화재 등 인근 지역 비상용으로 쓰인다. 큰비가 올 땐 빗물을 받아 하류로 흘러드는 양을 줄이고 비상시엔 저장된 빗물을 풀어 인근 지역에서 활용하는 시스템이다.

2008년 국제물학회지는 그가 설계한 스타시티 빗물 시설을 ‘세계적인 미래형 물 관리 모델’이라며 커버스토리로 소개했다. 골칫덩이였던 빗물은 이젠 없어서는 안 될 스타시티의 한 부분이 됐다. 한 교수는 이를 ‘홍익인간(弘益人間)’에 빗댄다. 그는 “재해의 원인으로 생각했던 빗물이 수자원이 되고, 쓰레기로 여겨 버리던 빗물에서 돈을 벌고, 빗물을 매개로 구성원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생성됐다”며 “사회적 책임 또한 다함으로써 빗물은 이웃과 나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홍익인간의 정신과 닮아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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