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곽금주] 2013년 불어닥친 과거회귀 심리 기사의 사진

결국 나정이는 첫사랑 쓰레기와 결혼한다. 오랜 세월 혼자 가슴 졸이며 나정이를 바라봤던 칠봉이, 오롯이 그런 사랑을 받고 싶은 여자들의 로망인 칠봉이는 이루지 못한 사랑을 마음에 담아둔 채 나정을 떠나보낸다. 올 가을 많은 이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내며 쏠쏠한 재미를 주었던 ‘응답하라 1994’가 막을 내렸다. 그 시대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과거 회상 드라마였다. 이런 과거에 대한 향수는 최근 우리 사회에 짙게 깔려 있다.

정치적으로도 그렇다. 얼마 전 시사저널이 조사한 광복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서 1위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10월 유신을 통한 인권 탄압, 노동운동 및 야당 탄압, 군사유혈독재와 부정축재, 친일반민족행위 논란 등 민주주의의 발전을 막은 기회주의자, 독재자라는 부정적 평가와는 대조적이다. 그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이 한국전쟁으로 인해 산업 기반이 붕괴된 시기에 경제 부흥을 위해 산업 기반을 재구축하고,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는 등 ‘조국 근대화의 기수’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경제 강국이 된 것은 박 전 대통령의 노력이었고 그 시기의 독재는 개발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즉 개발독재였다고 합리화하기도 한다. 이런 향수가 박근혜정부를 출범시키게 되었고 여기에는 경제발전 부흥을 가져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깔려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과거를 회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과거를 아름다운 것으로 미화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은 나쁜 것보다는 더욱 좋은 것으로 그려지게 마련이다. 이처럼 과거의 정권을 그리워하며 과거의 방식을 찾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꼭 그 시대에 만족하는 사람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신념과 태도, 행동에 일관성을 가지려는 속성 또한 가지고 있다. 박정희 시대에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었든 간에, 그 당시를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청춘을 바쳐 일했던 시대, 자신의 땀과 노력을 투자한 시대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과거의 지도자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지는 것 또한 이런 이유이기도 하다. 얼마 전 러시아에서 이루어진 여론조사에서 러시아인의 49%가 스탈린 같은 지도자의 복귀를 원한다고 한 결과도 마찬가지 맥락일 것이다. 많은 노인들이 스탈린 시대에는 상점에 생필품이 충분했고 사회에 질서와 규율이 있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 스탈린에 대한 믿음을 부정하는 것은 그 믿음에 청춘을 바친 자신과 자신의 일생을 모두 다 부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도리어 그 과거를 미화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 회귀 심리는 힘들거나 어려운 상황일 때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 사람들은 난관에 직면했을 때 과거를 되돌아봄으로써 우리가 누구였는지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싶어 한다. 우리 주변에서도 슬프고 우울한 현실에 대한 해결책으로 과거의 즐거운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것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과거의 즐거운 일들을 기억에 떠올리는 것이 현실에 동기를 부여하고 의미와 목적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 잘 되었던 과거 경험을 되짚어 보는 것은 사람의 보편적인 심리다.

사회 정치 문화적으로 올 한 해 우리에게 불어닥친 과거 회귀 현상, 향수의 심리는 진정으로 그때가 좋았다기보다 지금 이 현실이 너무나 불안하고 고통스럽다는 반증일 뿐이다. 지금 이 현실이 오죽 혼란스럽고 힘들면 차라리 단순했던 그때 그시절, 과거가 더욱 좋았다고 회고하고 싶은 것일까? 과거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열광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 이면의 심리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현실도피로서의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현실의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이 마련될 것이기 때문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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