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국정의 큰 그림을 다시 그려라 기사의 사진

“고용률 70% 달성, 정년연장과 임금체계 개편, 양극화 해소에 노동계 협력 필수적”

사상 최장 기간 이어진 철도 파업이 정치권의 중재로 잘 마무리됐지만 남긴 숙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 가운데 정부의 파업 대처 과정에서 드러난 노동정책과 고용노동부 실종 사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방하남 노동부 장관은 지난 23일 국회에 출석해 “경찰의 민주노총 강제 진입을 사전에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26일에는 “(철도 파업은) 국토교통부가 실질적인 주무부처”라고 했다. 대형 노동쟁의에서 노동부가 이처럼 아무 역할도 못한 전례는 적어도 6·10항쟁 이후에는 없다.

청와대의 파업 대처 과정에서 노동부의 관점이 반영되지 않은 것은 노동부가 올 들어 나서야 할 때 나서지 못하고, 발언해야 할 때 못한 탓도 크다. 문제는 노동부가 소외됨으로써 파업 초기 대응이 강경일변도로 흘렀고, 그 탓에 여론이 한때 정부에 불리하게 돌아갔다는 데 있다.

대국민은 물론 부처 간에도 소통이 없는 일방적 의사결정의 책임은 결국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 박 대통령은 2012년 8월 전태일 동상 앞에서 “나는 반드시 노동자들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려고 한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와대 고위직 및 내각에 노동 문제, 특히 노사관계 전문가를 한 명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대통령이 정기적으로 노사 대표와 만나 노동현안 의견을 듣고 대책을 논의하겠다”는 약속도 빈말이 됐다. 박근혜정부 1년 동안 노동정책은 결국 실종됐다.

박 대통령은 철도 파업에서 법과 원칙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공공부문 개혁의 첫 단추도 꿰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노동계와 등을 돌렸다. 개별 사업장 노동쟁의에서의 승패는 올해 맞닥뜨려야 할 국가적 의제들에 비추어 보면 오히려 지엽적이다. 고용률 70% 달성과 시간제 근로 활성화, 정년 연장과 통상임금 판결의 후속과제, 양극화 해소와 비정규직 차별시정 등은 노동계의 협력 없이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노동조합 내부 개혁도 이런 정책과제가 진척돼야 이뤄진다. 공기업 개혁, 복지 확대, 공무원·국민연금 개편 등 개혁과제와 공약의 추진도 노동계와 직·간접적 관련이 있다.

파이를 키운 다음 나누자는 이데올로기는 허구임이 입증됐다. 걷잡을 수 없는 양극화의 심화 추세를 막으려면 축적하는 시대에서 나누는 시대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급하다. 다른 선진국들은 국민소득이 지금의 우리나라보다 적은 1인당 1만∼1만5000달러 때 이미 누진세를 포함한 주요 복지 제도를 완성했고, 국민소득의 20% 안팎을 복지에 지출하기 시작했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 복지지출 비중의 2배다.

박 대통령은 ‘국민행복시대’를 주창했지만, 이제 새 시대에 맞춰 행복의 의미를 다시 새겨봐야 한다. 부의 크기와 효율성이 행복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한편에서 확산되고 있다. 철도노조 파업 과정에서 드러난 민영화에 대한 반발 여론도 같은 맥락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쏟아진 공감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반영한다.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가 심화됐고, 중산층이 감소했다. 무엇보다 임금근로자의 평균 근속연수가 계속 감소해 2012년 조사에서 5.34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짧아졌다. 실업의 공포, 에듀·하우스·렌트·메디컬 푸어 등 각박한 현실에 대한 좌절이 없었던 시절에 대한 동경이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폭발적 인기로 이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몇 달 전 사석에서 “박 대통령이 2년 동안은 정신 못 차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혼란스러운 적응 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줄일 수 있다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을 1년반에서 2년반으로 늘릴 수 있다. 결국 성패는 어떤 가치와 분야에 우선순위를 두느냐, 그리고 그에 따라 어떤 사람을 쓰느냐에 달려 있다. 요컨대 경제에서 사회, 성장에서 분배, 약탈적 경쟁에서 사회적 자본(신뢰와 협력)형성으로 국정의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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