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의 샘] 새벽강에서 띄우는 편지 기사의 사진

새해의 벽두, 미명을 뚫고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기 위해 북한강에 왔다. 귓불을 때리는 바람에 미명의 숲이 밭은 신음소리를 흘린다. 겨울 강이 길게 갈라지며 운다. 안녕치 못한 그들끼리 간밤의 안부라도 묻나보다.

흐르는 것이 강이다. 어릴 때 아버지께 곤(鯤)이라는 인물에 대해 들었다. 아득한 옛날, 그는 강을 다스리지 못해 깊은 산에 유배당했다고 한다. 강물을 막기에만 급급하여 천하를 홍수에 빠뜨렸다던 완고한 사나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머리에는 줄곧 민의(民意)라는 말이 맴돌았다. 너무 도식적인 생각이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한다.

춘추시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밖으로는 능수능란한 외교를 펼치며 안으로는 정나라 정치를 정비한 자산(子産)이란 인물이 있다. 그는 노년에 생애 최고의 개혁정치를 단행한다. 구리솥에다 형법을 명문화해 주조한 것이었다. 동양 최초의 성문법이 탄생하는 순간으로, 인류문화사적으로도 주목할만한 일대 사건이었다.

불문법으로 덕치의 기반을 삼던 주나라 시대. 형법은 타락한 세상의 징표로 인식되었다. 법의 명문화는 그 자체로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혼란에 빠뜨리는 심각한 반국가적, 반문화적인 행위였다. 더구나 영원한 국가 권력의 상징인 구리솥에 새겨 주조하다니. 그를 존경해 마지않던 많은 정치인들이 막아섰다. 그중 진나라의 숙향(叔向)이란 인물은 오랜 세월 자산에게 걸어왔던 정치적 기대를 철회하며 실망의 마음을 담은 장문의 편지를 보내기까지 했다.

뒷날의 많은 사람들은 형정(刑鼎) 주조 사건을 가리키며 자산을 법가의 시조로 꼽는다. 국정 운용의 중요한 수단으로 성문법을 상정한 측면에서나 군주의 권한을 강화하여 부국강병을 지향한다는 측면에서나 그를 법가의 시원적 인물로 간주하는 것을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찬찬히 따져볼 지점 역시 없지 않다.

자산은 인의(仁義)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법과 형을 생각했을 뿐 법 지상주의자는 아니었다. 인의의 가치에만 주목한 나머지 법률과 행정을 다소 경시한 유가의 주장과도 이질적이지만, 인의를 거추장스러운 위선으로 치부하고 법이 가지는 사회통제 기능과 그 효율성만을 중시한 전국시대 법가들의 사유와도 상당히 이질적이다.

자산의 형정 주조는 또 다른 측면에서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의미가 있다. 전 계급을 향한 법의 공표이기 때문이다. 뒷날 법가가 주장한 법은 제민(制民)의 성격이 강하다. 그에 비해 자산이 법을 성문화해 공지한 것은 통치계급을 겨냥해서이다. 아무런 기준과 제재 없이 백성의 물산과 노동력을 가혹하게 수탈하던 통치계급을 향해 확고부동한 기준으로 제재를 가한 것이다. 그가 제정한 법에 따르면 대부 계급은 물론이고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군주 역시 그전까지와는 달리 법의 규제를 받는다. 덕정을 빙자해 어떠한 제재도 없이 자의적 폭력을 마구 휘두르던 통치계급에 강력한 쐐기를 박은 것이다.

자산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춘추’에는 그의 인물됨을 보여주는 일화가 실려 있다. 당시 정나라 향교는 젊은 선비들이 모여 공부하고 토론하는 장소였다. 오늘날의 대학교와 그 성격이나 기능이 같다. 이곳에 모인 선비들은 학문을 토론하는 틈틈이 집정자의 실정과 부정을 질타했다. 젊은 만큼 비판은 신랄했다. 망신을 당한 집정자들은 향교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마침내 향교를 불온(不穩)의 온상으로 지목하여 허물어버리자는 의견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때 자산은 동료 집정자들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다. 그들이 내는 비판의 목소리를 듣고 정치를 개혁하거나 그들과 함께 호흡하여 새 시대를 연다면 젊은 선비들이야말로 집정자의 좋은 나침반이 될 수 있다는 게 자산의 생각이었다.

“위엄으로 막는다면 당장의 원성이야 막을 수 없을까요. 그러나 그것은 강물을 막아두는 것과 같습니다. 한번 터지는 날에는 수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지요. 그때에는 손써 볼 도리가 없습니다. 틔워서 흐르게 하거나, 내가 그들이 내는 비판의 목소리를 듣고 약으로 삼느니만 못합니다.”

정치의 본질은 국가 권력의 위엄으로 백성의 원성을 틀어막는 것이 아니라 언로를 틔워 여론을 수렴하고 그를 통해 드러난 제 모순을 풀어가는 것이라고 확신에 찬 자산이 던진 말이다. 정나라의 정치를 좌지우지하던 그가 죽었을 때 공자가 ‘옛날에 백성들에게 사랑을 남기셨던 분(古之遺愛)’이란 말로 애도를 표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옛 시에 말이 모이는 곳을 따라 민심도 뭉쳐진다고 했던가. 막기만 하고 틔울 줄 모르는 강둑. 그 강둑의 완고함을 향해 던지는 젊은 지성들의 편치 못한 소리가 모이고 있다. 그들을 스승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약으로 삼는 자산의 품 넓은 지혜가 새삼 절실한 날이다.

이규필(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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