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박기태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 단장 “독도 문제, 21세기 新헤이그 특사 돼 세계에 알려야” 기사의 사진

사무실 찾기가 쉽지 않았다. 박기태(40) 단장이 마중을 나오지 않았으면 한참을 헤맸을 뻔했다. 서울 성북구 보문로의 한 재래시장 모퉁이, 이름도 없는 건물 2층에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가 있었다. 열 평이 될까 말까한 사무실엔 네댓 명의 청년 민간외교관들이 한국 알리기에 열중이었다. 온갖 홍보물로 가득 찬 사무실 환경은 창고를 연상시킬 정도로 열악했으나 열기만큼은 한여름보다 뜨거웠다. 지난 2일 그를 만났다.

-아직도 반크를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어떤 단체인지 설명해 달라.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의 약자로 한국을 알고 싶어 하는 외국인 등에게 한국을 알리는 사이버 외교사절단이다. 반크는 한국을 아시아의 중심, 동북아의 관문 국가로 만들어 세계 모든 이들이 한국인을 중심으로 꿈과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지구촌 만남의 다리를 건설하는 단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를 평가하면.

“반크는 오랫동안 사이버 활동에 치중해 왔다. 작년부터 사이버를 초월해 온라인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외부 시설을 빌려 해외 유학생과 외국에 나가는 교환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달에 300∼500명씩 한국 홍보대사 프로그램 연수를 진행했다. 온라인에서 했던 교육을 오프라인에서도 하게 됐다. 1년에 해외로 나가는 한국인이 1000만명에 이르고, 유학생도 15만명이나 되는데 한국을 홍보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그래서 오프라인 교육을 추진하게 됐다. 아울러 미국, 중국, 우즈베키스탄, 몽골 등의 유명 대학에 가서 한류를 소개하고 한국을 알리는 소중한 기회도 가졌다. 10여년간 이뤄진 온라인 활동의 콘텐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올해 역점 사업은 무엇인가.

“세 가지다. 첫째는 통일외교 사업이다. 한국 알리기 사업을 해보니 외국 학자들은 북한 문제, 통일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한국을 홍보해도 요즘 한국 관련 외신의 99%가 북한 관련 뉴스다. 세계인들에게 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할 생각이다. 통일이 되면 통일한국이 아시아 평화의 중심이 될 거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싶다. 아울러 우리의 10∼20대들에게 통일에 대한 꿈을 심어주고 싶다. 두 번째는 동북아 평화 게스트하우스 사업이다. 중국과 일본의 학생들을 초청해 한국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역사 교류를 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을 대표할 수 있고, 한국을 세계에 홍보할 수 있는 차세대 리더를 양성하는 학교를 세우고 싶다. 학교 건립을 위해 누군가 폐교를 하나 기증해줬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지난해 한·일 관계는 최악이었다. 올해도 상황이 호전될 것 같지 않은데 관계 개선을 위해 민간 차원의 역할이 많다고 보는가.

“지난해 하버드대에서 독도 문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때 한 미국인이 ‘일본은 평화적으로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문제를 풀려 하는데 왜 한국은 비겁하게 그걸 거부하느냐’고 물었다. 일본 측 논리가 외국에서 먹히고 있는 반면 우리가 쪼잔하게 구는 것처럼 비쳤다. 너무 억울했고 가슴 아팠지만 그게 현실이다.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일본 우익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더 이상 조용한 외교, 방어적 외교로는 한계가 있다. 국제 분쟁화되는 건 안 되지만 독도 문제는 어떻게 보면 전시상황이나 다름없다. 미국에서도 독도 문제는 영토 문제라 싫어하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두 문제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같은 문제라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 21세기 신(新)헤이그 특사가 돼 3·1운동하는 심정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한다. 한국에 오는 외국인이 매년 1000만명이고 한국에 유학 중인 학생이 10만명에 이른다. 이들을 적극 설득해야 한다. 주한 일본대사관 위안부 소녀상 옆 빈자리에 일왕과 일본 총리를 앉게 하고 싶다.”

-정부의 독도 외교에 만족하는가.

“반크가 지난 10여년간 지켜온 원칙이 있다. ‘절대 정부 욕하지 않기’다. 개인적으로도 문제가 생길 경우 시위를 하거나 성명을 발표하는 걸 싫어한다. 우리 일을 묵묵히 해서 그런지 정부 쪽의 많은 사람들이 더 열심히 일한다. 초등학생, 할아버지까지 열심이니 외국인들도 좋아한다. 독도 문제, 역사 문제만큼은 민간이 더 잘하는 것 같다. 외국에 나가 보니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한 지도를 자주 본다. 분했다. 정부에 건의하면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고, 차라리 그럴 바에야 우리가 지도를 만들어 보내 교체하는 게 빠르다고 생각했다. 반크가 제작해 해외에 보낸 지도가 10여만부에 이른다. 편지를 보낸 외국 출판사가 500곳을 넘고, 시정 약속도 많이 받아냈다. 반크가 2001년부터 제작해 전 세계 초·중·고에 배포한 홍보물이 71종 100만부에 달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역사 문제에 무관심한 것 같다.

“기성세대의 문제다. 나 역시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배웠으나 지금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필수든 아니든 역사가 암기과목이 되는 순간 대학에 입학하거나 취업하면 바로 잊어버린다. 기회 있을 때마다 억지로 공부시키지 말고 다른 나라 학생과 교류시키라고 말한다. 교류하면 외국 친구라는 대상이 있기 때문에 공부한다. 서로의 문화, 역사, 위인들의 이야기가 오간다. 시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외국 친구와 교류하기 위해 공부한다. 그러다보면 외국 교과서에서 한국 관련 오류를 발견하게 되고 그걸 바로잡을 실력도 갖춰진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세계사를 살펴보면 일본 관련 분량은 10쪽에 이르는데 한국사는 일본사 일부분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나마 오류투성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미국에 유학가면 이런 교과서로 배운다. 외국 학생들이 엉터리를 배우고 있는데 이런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암기식 교육이 세계화 시대에 맞는 것인지 한탄스럽다. 우리나라 중·고교에서 1년에 적어도 한 번이라도 역사, 지리, 영어, 컴퓨터 공동 수업을 통해 외국 교과서의 잘못된 부분을 발견해 세계 교사들에게 연락하고 바로잡는 노력을 한다면 일본의 우경화를 막을 수 있다.”

-한국의 브랜드 가치가 저평가되고 있다고들 하는데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자조론에 빠져선 안 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중국은 외교관이 7000명, 일본은 5000명, 한국은 2000명 정도다. 지금 관련 예산을 늘린다 해도 중국과 일본을 따라가기 버겁다. 우리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 우리의 초고속 인터넷망 수준은 세계 1위다. 일본은 정부와 기업이 홍보를 주도하고 있고, 중국은 시민사회가 활성화돼 있지 않은 반면 우리는 민간단체 활동이 활발하다. 국가가 기회만 주면 외교관 못지않은 역할을 할 자원이 넘쳐난다. 이런 장점들을 승화시켜야 한다. 인터넷이 있어 충분히 가능하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증명했다.”

-활동하려면 적잖은 운영비가 들 텐데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는가.

“사실 1년 후를 기약할 수 없다. 예산을 정기적으로 주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2002년부터 회원들에게 가입비 3만원을 받고 있다. 매월 200∼400명의 회원이 새로 가입한다. 기업 등에서 사회공헌 차원에서 지원을 해주기도 하나 자주 있는 게 아니다. 상업적 지원은 일절 받지 않는다. 인건비, 사무실 임대료, 홍보물 제작비 등으로 매년 6억∼7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해마다 거액을 지원하는 가수 김장훈씨가 가장 큰 후원자다. 그래도 10년 동안 건강하게 버텨왔다. 정부에서 도움을 주기도 한다.”

-정치권에서 영입 제의가 많았을 것 같은데.

“2년 전부터 선거 때마다 입당권유 등 다양한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 모두 거절했다. 거절을 잘한 것 같다. 안철수씨도 정치인이 되면서 호불호가 나뉘더라. 보수, 진보 모두 반크를 좋아하는데 정치권 들어가면 이념 차이 때문에 반크 활동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이 많았다. 반크에 청소년 회원이 많은데 그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

-반크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과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얼마 후 일본 총리가 유엔 무대에서 보란 듯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세계 여론이 일본 쪽으로 확 쏠리더라. 그때 민간 외교의 한계와 무력함을 느꼈다. 일본의 글로벌 네트워크의 힘도 보았다. 일본은 항공모함 타고 있는데 우리는 돛단배 타고 움직이는 격이었다. 동시에 아이디어도 떠올랐다. 반크가 당장 유엔 무대엔 설 수 없더라도 외국 학생들을 상대로 우리의 얘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과 중국 등지를 돌며 일본 총리 이상으로 독도 문제를 얘기했다. 민간외교 차원이어서 초라해 보였을지 몰라도 효과는 작지 않았다. 반크 활동을 하면 학점을 주는 대학이 있다는 점도 뿌듯하다. 한양대는 1학점, 광운대는 3학점을 인정한다. 인터넷 시대에 전 국민이 외교관이 될 수 있다는 것과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았을 때 쾌감을 느낀다.”

-앞으로의 계획은.

“1단계는 끝난 것 같다. 청년들에게 반크 같은 단체를 창업하게 하고 싶다. 우선 빈곤, 환경, 역사 문제 등과 관련된 리더십 인큐베이터 200개를 양성하는 게 목표다. 3년간 회원 100만명 가입을 향해 뛸 생각이다. 외국에 비해 빈곤, 환경, 교육, 역사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한 한국인의 참여가 적다. ‘환경 반크’ ‘빈곤 반크’ 등 세계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청년 교육에 시즌2의 인생 목표를 두고 있다. 이를테면 반크 프랜차이즈인 셈이다.”

반크와 박기태 단장은

박기태 반크(VANK) 단장은 “외부 강연을 나가면 저를 외교관으로 생각하는 분이 많다”고 멋쩍어했다. 민간외교관으로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데 두드러진 활동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어떤 면에선 외교관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반크는 우연한 계기로 탄생했다. 그는 야간대학을 다녔다. 낮에는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빌딩 청소를 했다. 토익 점수에 신경 쓰고, 취업을 걱정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대학교 4학년 때 우연히 들은 ‘인터넷 활용과목’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 한 학기 동안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드는 게 수업 과제였다. 당시 해외 어학연수는커녕 외국여행이라곤 해본 적 없던 그는 어떤 주제로 만들까 고민하다 외국 대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는 펜팔 사이트를 생각했다. 취업에 도움이 될까 시작했던 개인 펜팔 사이트가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반크의 시작이 될 줄은 이때까지 아무도 몰랐다.

인터넷에 한국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사이버 관광 가이드가 되고 싶다는 프로필을 올렸다. 그리고 외국 대학의 한국 관련 학과 교수와 학생들에게 1000통이 넘는 편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예상 외로 많은 외국인들이 답장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한국 붐이 일면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남대문시장 3평짜리 옥탑방에 사무실을 내고 반크 업무에 전념했다. 박 단장은 “외국에서도 인턴으로 활동하기 위해 오는 이들이 많다”며 반크 자랑에 신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반크 회원 12만명 가운데 외국인 회원이 2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현재 활동 중인 최고령 회원은 83세, 최연소 회원은 초등학교 4학년생일 정도로 회원의 경력 또한 다양하다.

반크는 60억 인류를 대상으로 정치, 경제, 문화, 역사, 사회, 관광 등 한국의 이미지를 점진적으로 ‘친구의 나라’로 변화시키겠다는 웅대한 계획을 갖고 있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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