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타인의 삶 훔쳐 사는 SNS판 ‘화차’ 기사의 사진

타인의 삶을 훔치는 게 가능할까. 영화 ‘화차’에서 주인공 장문호는 갑자기 사라진 약혼녀를 찾다가 그녀의 이름, 경력, 주민등록번호 등 모든 게 다른 인물의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어린 시절 상처가 많았던 약혼녀는 다른 여성을 살해하고 그녀의 인생을 가로채 살아 왔다.

이 영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의외로 쉽게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동경하는 대상의 삶을 엿보는 데 만족했던 대중의 관음증은 온라인 시대를 맞아 남의 인생을 훔쳐가는 수준까지 진화했다.

“분명 나였어요. 그런데 분명 타인이기도 했죠. 몸이 덜덜 떨렸어요.”

회사원 이지나(가명·24·여)씨는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떨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최근 ‘인생을 도둑맞은’ 일을 겪었다.

지난달 2일 새벽 4시 이씨는 일면식도 없는 K양(18)의 페이스북을 우연히 보고 생전 처음 겪는 공포에 휩싸였다. 프로필에 이씨 사진이 버젓이 걸려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씨가 다닌 헬스클럽, 미용실은 물론 즐겨 찾는 음식점들까지 이씨의 일상은 모두 K양의 일상으로 둔갑해 있었다.

K양은 이씨의 일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냈다. 심지어 훤칠한 남성과 연애도 시작했다. 이씨는 “내가 들렀던 장소, 내 머리 스타일, 내가 새로 산 신발 등 모든 것이 K양의 삶이 돼 있었다”며 울먹였다. K양은 왜 이씨의 삶을 훔친 것일까.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온라인에서 ‘타인의 삶’을 통째로 베껴 자신의 것인 양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인생 도둑’이라 불러야 할 이들은 단순히 타인 행세를 하는 데서 더 나아가 동경하는 사람의 생활습관, 취미, 취향까지 모방한다. 전문가들은 현대인들의 욕구불만이 이 같은 도용 현상을 부추겼다고 분석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범죄 양상이지만 인생 도둑을 법으로 처벌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성희롱이나 모욕이라면 모를까, 부러워한 걸 갖고 처벌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외국계 SNS를 이용했을 경우에는 사실상 국내 경찰이 수사할 방법이 없다. 피해자들은 스스로 복잡한 민사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세계인 5명 중 1명은 1개 이상 SNS를 사용하는 시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다른 이의 삶을 베껴 살고 있을지 추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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