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신분 도용 (하)-타인의 삶을 훔친 ‘화차’] ‘온라인 인생 절도’ 속수무책 기사의 사진

페이스북에서 K양(18)에게 일상을 집요하게 도용당한 이지나(가명·24·여)씨. 경찰서에 찾아갔지만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알고 혼자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페이스북에 있는 K양 이름이 실명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씨는 지난달 2일부터 한 달 동안 페이스북 메신저 기능을 통해 K양에게 “내 사진을 지워 달라”고 수차례 요구했다. K양은 적반하장으로 “경찰서에서 보자”며 이씨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씨는 왜 속수무책이었고, K양은 왜 이토록 당당했을까.

온라인에서의 도용·사칭은 현대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난제다. 이와 관련한 내용을 명확히 규정한 법도 없고, 수사도 어렵다. ‘인생 도둑’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은 계속 늘고 있다.

◇일반인 일상에까지 침투한 도용 범죄=2012년 11월 한 트위터 이용자가 자신을 배우 독고영재라고 소개하며 트위터 계정에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철수 대선 후보를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선거가 임박한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자 온라인에서는 “정치 싸움을 유도한다”며 독고영재를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많은 언론 매체가 이를 보도했다.

이 트위터는 독고영재씨 계정이 아니었다. 독고씨는 곧바로 “나는 트위터를 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독고영재가 안철수와 박원순을 비난했다”는 내용의 수많은 온라인 기사와 블로그 글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뿐 아니라 탤런트 박신혜 송혜교 이종석을 비롯해 방송인 사유리 등 많은 유명인이 자신을 사칭한 SNS 계정 때문에 수차례 골머리를 앓았다.

일반인의 일상에서도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같은 달 온라인의 한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시누이가 내 일상을 자신의 일상인 것처럼 꾸며 산다”는 내용의 글이 게시판을 뜨겁게 달궜다. 이 네티즌은 “시누이가 내 집 사진부터 내가 먹은 음식과 구입한 그릇 사진 등 사소한 것들까지 자신의 카카오스토리로 ‘불펌’(인터넷에서 허락 없이 사진 등을 퍼간다는 뜻의 은어)해 친구들의 부러움 섞인 댓글을 즐기고 있다”며 “지인들과 공유하는 내 사생활이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반강제로 공개돼 매우 불쾌하다”고 털어놨다.

◇국내법으로는 처벌 어려워=이 같은 행위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답은 “아직은 어렵다”이다. 경찰 관계자는 “타인을 사칭·도용해 이득을 취하거나 도용 대상에 대해 성희롱이나 모욕 등을 일삼지 않은 이상 단순히 부러워서 퍼간 걸 명예훼손으로 형사 고소하기는 어렵다”고 8일 말했다.

모욕 등의 구체적 피해를 입었더라도 도용한 사람이 외국계 SNS를 이용했을 경우 경찰 수사는 미궁에 빠지기 쉽다. 해외 서버에 접근하려면 타국 경찰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은 매우 까다롭다. K양을 고소하러 경찰서까지 찾아간 이씨가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SNS업체에 직접 연락해 계정 폐쇄를 요구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현재 카카오톡 같은 국내 업체 서비스를 이용한 사칭 계정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계정 폐쇄가 가능하다. 그러나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많은 외국 업체는 ‘법적 소송을 거치지 않고는 임의로 계정을 삭제할 수 없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법적 소송을 미국 법원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설사 소송을 실제로 진행해 이기더라도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사실상 우리나라 법망 안에서는 해결 방법이 없는 셈이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