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남성현] 구석구석 흘러 치료해야 기사의 사진

5세기 초반에 쓰인 ‘멜라니아의 생애’에 나오는 이야기다. 원로원 가문 태생인 멜라니아와 남편 피니아누스는 엄청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부부는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마 19.21)는 예수의 말씀을 동경하여 자신들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기로 결단한다. 그리고 로마를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가 새로운 삶을 살기로 계획한다. 하지만 이들의 의지는 로마 귀족사회의 방해에 직면한다.

특권층이 장악한 서로마제국

로마제국은 300개 정도 되는 원로원 항렬의 가문들이 견고한 경제 카르텔을 형성했다. 이 당시 법에 따르면 원로원 계급에 속한 가문은 보다 낮은 계급의 토지를 마음대로 매입할 수는 있었지만, 일단 매입한 토지는 반드시 원로원 가문에만 매각해야 했다. 이로써 원로원 계급의 전체 토지는 점점 늘어났고 이런 경제 카르텔은 정치권력의 기반이 되었다.

소유 전체를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자 한 멜라니아 부부의 결단은 원로원 계급의 경제 카르텔에 대한 저항으로 인식되었다. 여러 가지 방해 공작이 있었다. 멜라니아 부부는 황제의 재결을 얻어 낸 후에야 대농장들을 처분할 수 있었다. 멜라니아가 로마를 떠난 후 얼마 뒤인 411년 로마는 고트족에 의해 약탈당하고 476년 서로마는 멸망한다.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를 도와주려는 선의를 제도적으로 막는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게다.

부의 쏠림현상에서 벗어나야

지난 연말에 나온 여러 가지 통계를 주목해 보았다. 지난 12월 통계청의 ‘영리법인 기업체 행정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 중 1%에 불과한 대기업이 우리나라 전체 기업 매출의 3분의 2를, 99%의 중소기업은 3분의 1을 차지한다. 또 2013년도 30개 그룹의 실적은 1∼4위 그룹이 나머지 26개의 그룹을 압도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평등이 클 뿐 아니라 재벌 사이에서의 쏠림 현상도 크다.

30대 그룹의 계열사 숫자도 눈에 들어온다. 2008년 30대 그룹의 계열사는 총 781개였는데 2013년 1187개가 되어 5년 사이에 무려 406개나 늘었다. 공정거래법의 내부거래 규제나 순환출자 규제 등의 조항에도 불구하고 30대 그룹의 계열사는 대폭 증가했다.

그런데 경제의 대기업 쏠림 현상과 동시에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힘들게 되었다. 새해 초 발표한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빈곤 탈출률은 2005년 32%에서 2012년 23%로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2005년에는 저소득층 가구 셋 중 하나가 중산층 이상이 되었지만 2012년에는 네 가구 중 하나만 빈곤에서 벗어낫다는 것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돈은 위에서 아래를 빨아당긴다. 로마의 특권 계층의 카르텔을 보아도 그렇고, 우리나라 경제의 통계를 보아도 그렇다. 서로마제국의 특권 계층이 돈을 빨아들일 당시 동로마제국의 이집트 사막에서는 ‘돈과 땅에 대한 사랑’을 탐욕의 마귀로 간주하는 기독교 영성이 맹위를 떨친다.

그 결과 멜라니아가 로마를 떠나던 때에 동로마제국에는 교회와 수도원이 운영하는 인류 최초의 무료 병원이 여기저기에 세워진다. 서로마가 476년 멸망한 후 동로마는 1453년까지 무려 1000년가량을 기독교 제국으로 번영한다. 사회의 멸망과 번영에는 영적인 이유가 반드시 있다.

한 사회의 흥망성쇠는 돈이 많고 적음에 있는 게 아니라 돈의 흐름에 달려 있다. 한 곳에 가두어 놓아 소유한 자의 영혼과 함께 썩는 돈이 아니라, 구석구석 흘러 어두운 곳을 밝히고 치료하는 돈이 되었으면 한다.

남성현 한영신학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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