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오케스트라 지휘자 겸 서울예고 교장 금난새 “한국의 문화 아이콘, 세계에 심고 싶다” 기사의 사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지휘자 금난새(67). 최근 서울예고 교장이란 직함이 더 생겼다. 지난해 10월 모교의 교장으로 취임한 그는 지휘자이자 예술단장, CEO에서 이번엔 교육가로 또 변신했다. 그는 정말 바쁘다. 인터뷰 요청한 지 한달 넘어서야 어렵사리 만날 수 있었다. 지난 1월 6일 오후 서울 정동의 예원학교. 서울예고와 같은 서울예술학원(이사장 이대봉)소속인 이 학교 별관 음악실은 강추위에도 열기가 달아올랐다. 예비 예고생 40명이 ‘금난새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준비 중이었다. 지도교사 1명에 4∼6명이 연습 중인 각 방을 돌며 그는 미세한 선율까지 꼼꼼히 챙겼다. ‘웃겨도 웃고, 안 웃겨도 웃는다’는 미소년의 모습이랄까. 1시간 30여분 인터뷰 내내 소탈한 웃음에 희망과 꿈, 열정이 쉼없이 배어나왔다.

-지휘자가 교장이 되셨는데.

“지난해 5월 서울예고 창립 60주년 기념연주회를 가졌다. 서울예고와 예원학교 재단인 서울예술학원의 이대봉 이사장을 처음 그 자리에서 만났다. 연주회 후 식사하며 대화도 나눴다. 그 후 한번 이사장을 만났는데 9월 말 갑자기 ‘교장을 맡아 달라’는 연락을 해왔다. 처음엔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다. 결국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방향’의 의미는.

“예고는 예술계의 심장이다. 교육에 관심없는 사람은 없다. 우리 교육도 이제 산학협동처럼 갔으면 한다. 예술은 결코 도를 닦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나는 연주자와 음악가, 예술가만이 아닌 다른 쪽에서 많은 도전을 할 수 있었다. K팝이나 뮤지컬이 10년 사이에 엄청난 발전을 하지 않았나. 예술의전당은 물론 로비, 광장, 문화센터, 도서관 전국 어디서든 연주회를 한다. 예술계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시장은 넓은데 많은 예술가들이 시장을 낯설게 느낀다. 과거 올림픽에서 메달경쟁을 하던 것처럼 예술계가 그런 실적 위주가 되어서는 안된다.”

-교육철학을 소개하면.

“아이들이 너무 솔로나 독주, 콩쿠르 위주, 입시위주로만 간다. 필요한 것은 음악가인데 마치 기능공을 양산했다고 할까. 기능공과 예술가는 다르다. 콩쿠르 상은 많이 받지만 노벨상을 받는 사람이 없는 격이다. 노벨상은 그 분야에서 뛰어나다고만 되는 게 아니고 연구나 지식이 인류에 공헌해야 주지 않는가. 이제 기능올림픽이 중요하던 시대는 아니다. 서울예고는 잘하는 학생들의 울타리가 아니라, 잘하든 못하든 학교에 들어와 새로운 세계, 건강한 세계를 볼 수 있는 교육을 하려 한다.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해야 한다.

혼자 하는 줄넘기는 두 번도 넘고 X자로도 할 수 있듯이 개인들의 재능은 뛰어나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나 앙상블은 남이 돌리는 줄에 자기가 들어가는 것이다.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리듬을 타면서 줄에 걸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혼자가 아니라 남들과 함께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보강되지 않으면 편식의 음악가가 될 뿐이다. 이제 서울예고의 패션을 바꾸려 한다.”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있는 일상’을 강조하는데.

“언젠가 제주신라호텔이 겨울 비수기를 극복하는 방안이 없느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체임버 뮤직 페스티벌 아이디어를 냈다. 체임버 뮤직이 활성화된 외국같이 비수기인 겨울에 한번 해보자는 것이었다. 당시 기업 6곳이 참여했다. 당초 없었던 서귀포시까지 ‘왜 안넣어 주느냐’고 하더라. 다른 페스티벌들은 모두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아서 한다. 나는 아이디어를 내고 기업들이 참여하도록 했다. 지원금이 아니라 기업이 자발적인 동참을 하게 만드는 일종의 마케팅이었다. 이제 제주신라호텔은 겨울 비수기가 없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음악계도 새로운 아이템이 필요하다. 언제 어디서든 오케스트라는 행복을 주고, 음악회는 많은 이들에게 기쁨이 되어야 한다.”

-예술계도 변화가 필요한가.

“음악을 사랑하고 연주하고 싶다면 누구든 그 꿈을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변하는데 우리 음악인들도 그에 맞춰 몫을 담당해야 한다. 예술계나 클래식, 오케스트라, 이제는 독립심이 필요하다. 많은 예술가나 음악가들이 지원금을 받는다. 그런데도 오케스트라나 오페라는 항상 지원금이 적다는 말만 하지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K팝이나 뮤지컬이 지원금을 받아 지금 같이 성장했나. 이제 예술계도 도전정신, 벤처정신이 필요하다.”

-한국대학생연합오케스트라(KUCO, Korea United College Orchestra)를 지휘하는 배경은.

“2010년 3월 전국 25개 대학, 60개 전공의 대학생으로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4년 전 대학생 10명이 찾아와 예술의전당에서 어려운 곡을 한번 연주하는 것이 꿈이라고 하더라. 그것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비록 아마추어이지만 음악을 전공하지 않는 대학생들이 연주하는 게 얼마나 좋은가.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4번 f단조를 다른 음대보다도 더 잘해서 놀랐다. 다들 아쉽다 해서 Kuco를 창단했다. 작년에는 말러 교향곡 1번을 연주했다(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말러교향곡은 연주하기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있는 작품). 2월에는 서울대와 카이스트, 포스텍 등 40개 대학교 학생들이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을 연주한다.”

-농어촌희망청소년오케스트라(KYDO, Korean Young Dream Orchestra)에 남다른 애정을 갖는 이유는.

“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전국 20개 군에 청소년 오케스트라 20개가 있다. 단원은 50명 정도다. 내가 멘토로 ‘금난새와 함께 하는 음악회’를 정기 개최한다. 물론 20개 오케스트라에는 단장과 지휘자가 따로 있다. 1년에 한차례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회를 한다. 재작년 첫 연주 때 베토벤 5번 운명 교향곡을 연주했다. 단상에 다 못 올라가니 10명씩 단원 200명이 드보르작 심포니를 연주했다. 이게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대도시도 아닌 군 단위의 합천, 진안, 땅끝마을에서 청소년들이 음악을 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지난해 4월 화천에서 연주회와 공개수업이 있었다. 그곳에 아름다운 호수(화천댐)가 있더라. 군수에게 ‘땅을 주시면 청소년들을 위한 문화센터를 짓고 싶다’는 의향을 비쳤다. 초면인데도 군수께서 흔쾌히 ‘선생님이 하신다면 드릴 수도 있다’고 하더라. 아직 확정은 안됐지만 화천의 Kydo 청소년들이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연주할 문화센터를 짓고 싶다. 뜻이 있으면 그런 식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되더라. 화천 외 다른 20개 군의 청소년들에게도 음악의 꿈을 심어주고 싶다. (화천군수 같이) 선뜻 내놓겠다는 분이 있다는 게 시대의 변화를 말한다. 우리가 그런데 눈을 떠야 한다. 내가 앞으로 할 일이 그런 거다.”

-한국이 아닌 뉴욕 맨해튼에서 체임버 페스티벌을 했는데.

“몇해 전 김종섭 삼익피아노 회장이 뉴욕 스타인웨이 대주주가 되었다. 그런데 그분이 제주 페스티벌에 오셨더라. 나랑 같은 학번이고 대학 때 나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맨해튼체임버 오케스트라를 하자고 했더니 선뜻 허락했다. 카네기 홀 건너편 뉴욕 57번가 스타인웨이에서 연주회를 했다. 그런데 반기문 총장께서 참석했다. 초대받은 분들 다 무척 좋아하셨던 것 같다. 비단 음악가만이 아니라 기업과 외교 세 축이 합쳐서 세계예술의 심장부 뉴욕에서 연주회를 했다. 반 총장께서도 아주 좋으셨던지 작년 연주회에는 20명의 대사와 함께 오셨다. 각국 대사 등 90여명과 음악회 겸 저녁을 함께 했다.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뉴욕페스티벌이 된 것이다. 오는 5월에 또 할 예정이며 앞으로 계속할 것이다.”

-뉴욕 페스티벌이 갖는 의미는.

“한국음악의 새로운 수출이라 할까. 그동안 외국 음악을 수입하는 것이 다 아니었나. 외국에서 공부하고 오는 게 대부분이었다. 거꾸로 뉴욕에 새로운 우리의 문화적 아이콘을 심고 싶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외교, 기업들이 함께 하면 자리잡을 것이고 또 흥미롭지 않을까. 뉴욕 브로드웨이에 문을 연 카페베네에서 연주회를 하자고 했다. 스타벅스가 아닌 우리 기업 카페베네를 통해 한국의 저력을 보여주고 싶다. 뉴욕에 3호점을 연 카페베네가 계속 오픈한다고 한다. 단순히 지원을 받는 것만 생각말고 삶을 위해 무엇을 할까 생각할 때가 되었다. 외교는 비단 외교관만이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기업과 문화가 합쳐져 우리 저력을 나타낼 때가 되었다.”

-인생에서 마치 신문의 헤드라인 같은 것을 뽑는다면.

“누구나 인생을 가이드해주거나 삶을 밀어주는 ‘친구’들이 있다. 친구란 보통 사람을 생각하지만 책이나 말, 문장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친구 중 하나가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이다.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 요구하지 말고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요구하라’는 내용이다. 긴 연설이었지만 이게 당시 미국신문의 헤드라인이었다. 나는 그것을 기억한다. 지금도 연설문을 포켓에 넣고 다닌다. 나도 국가만이 아니라 가족이나 학교, 학생들을 위해 이를 실천하고 싶다. 교장이 되었으니 학교를 위해 뭔가 하겠다고 생각한다. 위대한 곳에서 연주하고, 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을 싫어할 지휘자는 없다. 하지만 청중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나의 행복을 나누려고 늘 생각해왔다. 그래서 바쁘다며 거절하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한다.”

-기독교 소명의식인가.

“모교인 서울예고는 기독학교다. 학교 다닐 때 채플시간을 너무 좋아했다. 어릴 적 영락교회에 나갔다. 소명의식을 많이 느낀다. ‘음악인으로서 뭔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와 사회, 가정을 위한 나의 역할을 느낀다. 주변에서 비슷한 말씀들을 하신다. 나는 ‘우리가 함께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1970년 독일 유학도 갑자기 가게 됐다. 독일에서 고아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자기 나라 사람도 아닌데 6년간 무료로 공부할 수 있게 해주었다. 독일 학교가 준 선물이다. 지식에 굶주려 있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던 나를 독일이 돌봐주었다. 나를 만난 적도 없고, 또 한국이 어딘지도 모르던 독일 선생님은 내 전화를 받고 흔쾌히 ‘가르쳐 주겠다’고 하셨다. 그 후 선생님께 레슨비를 드린 적이 없다. 지금 나는 오디션 받으러 오면 거절한 적이 없다. 이제 독일 선생님에게 (레슨비를) 돌려드릴 수는 없다. 여기서 공개할 수 없지만 그런 걸 하고 싶다. 내가 변화하려 노력한다면 걸맞은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론적으로만 변화가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다”

-향후 계획은.

“새로운 것을 한다기보다 지금까지 해온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한다. 우리말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것이 있다. 여러 민간 오케스트라나 페스티벌, 음악시장을 넓히거나 해설 프로그램을 하는 등 여러 시도를 해왔다. 이제 이것을 어떻게 엮느냐가 남은 숙제다. 그중 음악을 사랑하는 청소년들에게 꿈을 주는 Kydo가 나에겐 가장 중요하다.”

김경호 논설위원 kyungho@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