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의 샘] 역사는 현실보다 엄하다 기사의 사진

현상을 본 다음엔 그 이면의 진실을 살피라는 논어의 경구가 새삼 절실해지는 요즈음이다. 특정 출판사 한국사 교과서의 오류와 왜곡, 편향적 사관이 문제가 되어 한동안 온 나라가 한국사 교과서에 관심을 가졌다. 입시 위주의 교육에 밀려 변두리 과목으로 전락했던 국사 교과의 입장에서는 관심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요 몇 달이 오히려 행복했을지 모른다.

어떤 정치인은 학생들이 부정적 사관으로 일관된 교과서로 교육받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문제가 된 교과서의 시각을 긍정적 사관이라 두둔했다. 이 말을 접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문제가 된 교과서는 우리 민족의 시원을 황화문명권 확장의 파생으로 보는가 하면, 근대와 관련해서도 자력으로 근대화를 이룰 수 없는 나라로 서술하는 등 중요한 맥락마다 우리 민족의 잠재적 역량을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런 교과서에 대해 긍정적인 사관을 견지한 것으로 평가한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식민지 근대화론을 외치는 사람들은 한말의 친일 지식인들이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은 미개국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요컨대 잠재적 역량이 부족한 우리 민족에 있어 친일 지식인들은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아니라 진정한 선각적 리더라는 것이다. 일제 강침이 미화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머릿속에 이러한 생각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식은 어디서부터 비틀렸을까. 한말의 역사 현실에서 찾아본다. 19세기 말의 세계정세는 순전히 힘의 논리에 의해 움직였다. 오늘날도 본질적으로 다르지는 않지만 적어도 세계인의 눈을 의식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것이 위선이라 할지언정 이만큼의 평화가 유지되는 것은 대단한 진보이다. 어떠한 제어 장치 없이 오직 양육강식만 존재했던 시대, 거대한 청나라의 몰락을 보며 조선 지식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서세의 동점에 위기를 느낀 일제는 아시아의 물산과 노동력을 수탈하여 세계적 강국이 되고 싶었다. 검은 속내를 숨긴 채 아시아 지식인들에게 꽤나 솔깃한 제안을 했다. 아시아인들끼리 대동단결해 서구의 침략을 막아내자는 것이었다. 일제는 공동의 피해 의식을 자극해 동질의식을 형성하고, 그를 통해 동아시아를 하나의 세력으로 묶은 다음 그 맹주를 자처한 것이다. 일제가 서양의 인종주의를 베껴 고안해낸 범아시아주의의 정치적 실체. 이것이 대동아공영론의 탄생이다.

아시아를 함께 경영하고 힘을 합해 서구의 침략을 몰아낸다니. 달콤한 이 제안을 딱하게도 친일 지식인들은 어둠 속에 내려온 한 줄기 빛처럼 느꼈을지도 모른다. 세계 평화를 위해 군사력을 증강한다는 궤변에 넘어가 선망의 눈길을 보낸 것은 이 때문이다. 이후 전개된 역사가 몸서리치게 참혹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을 흑백논리로 단죄할 생각은 없다. 그들이 선 지평이 아침저녁으로 무수한 매체를 통해 세계 소식을 접하는 오늘과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이 제안한 대동아공영의 사상적 프레임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동의 피해 의식을 자극하여 하나의 세력으로 묶고, 그 세력의 패권국에 굴종에 가까운 헌신을 보이는 태도에서 군사력 증강이 세계 평화를 위한 것이라는 구호까지. 왠지 모를 이 불편함. 나는 이 전형을 냉전 시대의 한국과 미국에서 본다. 친일파의 후세대는 이런 사상적 프레임에 따라 패망한 일제를 버리고 강력한 새 주인을 섬겼다. 그 사상적 프레임을 결코 간과할 수 없노라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정 교과서를 두둔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억울함의 본질을 알 것 같다. 그들은 친일 지식인을 이어 자신들이 오늘에 이르도록 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성장시켜 왔다고 자부한다. 고난의 가시밭길을 온전히 자신들의 힘으로 버티어 왔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것이 그들의 진심이기에 온 나라 사람의 질책이 분하고 억울하다.

그러나 속아 넘어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번민과 고뇌로 방황했던 것이 아니라 나라의 이권을 차지하고 권력을 농단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적 선배와 달랐다. 19세기 말로 보면 진보의 상징이었을 사상적 선배와 달리 그들은 그렇게 오늘날 보수가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최근 일본의 한 교수는 일본 해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가쓰 가이슈(勝海舟·1823∼1899)가 반전평화주의자였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의 의도는 섣불리 넘겨짚기 어렵지만, 머잖아 반전과 평화를 내세운 자위대 군사력 증강에 명분을 제공할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군국적 제국주의의 메커니즘이다. 집단자위권 운운하는 최근의 발언이 그 징후를 보여준다.

세계는 거대 문화권으로 뭉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은 범아시아를 외치기 시작했다. 다시 백여 년 전과 꼭 같은 상황이다. 우리 앞에 가로놓인 물살 거친 이 강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 역사는 엄한 현실이 되어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

이규필(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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