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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염운옥] 이스라엘 설계자의 죽음

[글로벌 포커스-염운옥] 이스라엘 설계자의 죽음 기사의 사진

지난 11일, 8년간 코마 상태에 있던 아리엘 샤론(86) 전 이스라엘 총리가 숨졌다. 시몬 페레스 대통령은 “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수호자였고 설계자였다”고 애도했다. 샤론의 삶은 이스라엘 현대사를 대변한다. 그는 이스라엘 건국과정에서 피할 수 없었던 4차례에 걸친 아랍 국가들과의 중동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었다. 영국 위임통치 시절인 1928년 텔아비브 북부 마을에서 러시아에서 이주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샤론은 10대 시절부터 지하 군사조직 ‘하나가’에 가입했다. 1948년 5월 초대 총리가 되는 벤 구리온이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면서 1차 중동전쟁이 벌어지자 샤론은 육군 소대장으로 참전해 활약했다. 이스라엘 지중해 연안의 비옥한 땅 이름 ‘샤론’은 이 때 벤 구리온이 선사해준 것이다.

박정희 시대에 이스라엘은 매우 친숙한 우방국이었다. 이스라엘의 반공 국가주의는 안보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구했던 박정희 정권의 목표와 잘 맞아 떨어졌다. 애국심을 고취할 때 아직도 인용되는 이야기도 이스라엘에 관한 것이다. ‘6일 전쟁’, 즉 3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에 사는 이스라엘 유학생들은 전쟁에 자원했는데, 아랍 유학생은 그렇지 않았다는 이야기. 작고 힘없는 이스라엘이 아랍 연맹을 맞아 단기간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애국심이었다는 ‘신화’ 말이다. 6일 전쟁의 ‘기적’은 조국 근대화라는 사명으로 유신 독재체제를 정당화하려는 박정희 정권에 더 없이 좋은 참고자료였다. 당시 미국 중앙정보부는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군사력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이스라엘의 압승을 예견하고 있었다.

샤론은 ‘6일 전쟁’ 때 기갑부대 사단장으로 참전해 큰 공을 세웠다. 머리에 중상을 입고도 모세 다얀 국방장관 곁을 지키고 있는 용맹한 군인 샤론의 모습이 기억에 새롭다. 2차 대전 때 한쪽 눈을 잃은 다얀 장군이 착용한 검은 안대와 샤론의 머리에 감긴 하얀 붕대가 사진 속에서 대조를 이룬다. 1977년 농업장관이던 샤론은 3차 중동전쟁에서 점령한 지역인 가자지구와 서안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해 팔레스타인을 몰아내는 ‘샤론 계획’을 주도했다.

친구들에게는 ‘아릭’이라는 애칭으로, 비판자들에게는 ‘불도저’로 불린 샤론은 타협을 모르는 강경 우파 군인이자 정치가였다. 1982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와해시키기 위해 레바논 베이루트를 침공했을 때 사브라·샤틸라 난민 캠프에서 팔레스타인 난민 수천명이 민병대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끔찍한 살육의 증거를 은폐하려고 시신을 훼손했기 때문에 사망자는 700여명에서 3500여명으로 추정될 뿐이다.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그는 ‘베이루트의 학살자’라는 오명을 듣고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팔레스타인에서 그의 죽음에 “지옥에나 떨어져라”며 축배를 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에서도 모두가 추앙하는 것은 아니다. 2001년 우파 리쿠드당 대표로 총리에 오른 후에도 대 팔레스타인 강경노선을 이어갔던 그였지만, 2003년 재선에 성공한 후에는 공존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5년 자신이 건설한 가자지구 이스라엘 정착촌 주민 8500명과 진주군의 철수를 명령했다. 샤론의 변화 이면에는 이스라엘 내부로부터의 비판이 있었다. 2003년 9월, 이스라엘 공군 조종사 27명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 명령을 거부했다. 조종사들이 명령을 거부한 이유는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를 표적 살해하는 작전 과정에서 인구 밀집 지역에 폭탄을 투하해 무고한 민간인이 학살되는 데 대한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다. 이스라엘군 가운데서도 엘리트 집단으로 꼽히는 이들의 출격 거부에 이스라엘 군부는 큰 충격에 빠졌었다. 또한 공군 대위 출신 요나탄 섀피라는 엘리트 군인이자 강고한 시온주의자에서 평화운동가로 변신해 이스라엘의 잔혹 행위를 고발하는 동영상을 BBC에 공개했다.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이스라엘 건국 주역, 샤론은 이제 영면에 들었다.

염운옥 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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