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희생적 양보 혹은 계산된 연출 기사의 사진

안철수 의원이 2011년 9월 6일 무슨 생각으로 박원순 변호사의 손을 들어주며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포기했는지는 당사자만이 알 일이다. 박 변호사가 백두대간을 종주하다가 49일째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서 출마를 결심하게 됐는지, 애초에 기획한 퍼포먼스였는지도 가리기 어렵다.

텁수룩한 수염, 뭉텅 떨어져 나간 구두 굽이 ‘연출’이었다면 안 당시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그 담백한 양보도 잘 짜인 각본이었을 수 있다. 급격히 치솟는 여론조사 지지율에 스스로 도취되지 않았다면 목석이거나 신이지 사람은 아니다. ‘대통령’으로 목표를 바꾸자면 명분, 그리고 그것을 치장해 줄 극적인 상황이 필요했다. 박 변호사에 대한 양보는 그 점에서 제격이었다.

‘양보 빚’ 싸고 맞서는 安과 朴

오래 참는구나 했는데, 안 의원이 결국 그때 일을 언급하고 나섰다. 두 번 양보했으니 이젠 양보 받을 차례라고 했다. 조선일보 인터뷰 내용만으로 보자면 서울시장 후보를 반드시 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백번이라도 양보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기본적으로 안 의원님이나 저나 기존에 정치권에서 보는 시각하고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면서까지 크게 봐준 것으로 여기는 모양이나 민주당은 물론이려니와 박 시장조차 갚아야 할 신세로 여기는 것 같지는 않다. 좋게 말하자면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낸 ‘새로운 정치문법’, 정치 발전을 위한 상생적 결단이었고, 일상 언어로 말하자면 나름대로의 계산에 따른 양보 이벤트였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어쨌든 새정추로서는 서울에서 후보를 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기실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신당의 한계와 패주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따라서 모범답안 작성은 박 시장 몫이 됐다. 선택지는 세 가지다. 안 의원 주문대로 양보를 하는 게 제1안이다. 그게 싫으면 정면승부를 벌여야 한다. 물론 제3의 길도 있긴 하다. ‘안철수 신당’으로 옮겨 앉는 것이다.

공학적 접근, 정당 퇴화시킨다

그런데 박 시장은 그 어느 것도 아닌 새정추의 전략적 선택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새정추가 서울을 비켜가면서 다른 수도권 광역단체장을 확실하게 꿰차는 길을 모색한다면 또 한 번의 ‘아름다운 포옹’이 연출될 수 있다는…. 이러나저러나 (현재로서는) 접점이 보이지 않는 만큼 1대 다자 대결구도로 갈 공산이 커 보인다. ‘불감청이언정고소원!’ 새누리당으로서야 이런 상황보다 더 반길 일이 달리 있으랴.

하긴 경쟁은 그들의 몫이다. 유권자로서 그 사람들 걱정까지 다 하는 것은 오지랖 자랑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도 해둬야 할 것 같은 말이 있다. 선거 때만 되면 야당들이 선거연대, 공동정부를 들먹이는데 이야말로 정당정치의 노쇠화 및 타락 현상이다. ‘아름다운 양보’는 좋지만 ‘선거공학적 거래’는 정당정치의 의의를 퇴색시키고 만다.

정당은 차별성과 자기책임성을 가져야 한다. 경계가 모호한 정당들이 이름만으로 난립해 있으면서 이른바 선거연대의 구조 속에 공생과 연명을 꾀할 경우 건강한 정치가 도출될 수 있을 리 없다. 내각제라면 또 모르겠지만 대통령제 하에서 집권당에 대한 야권연대는 진영 간의 무한대결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세 갚기’ 갈등을 부를 수도 있다. 멀리서 그 예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 우리 정치 상황이 보여주는 광경이 바로 그것이다.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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