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도원욱] 소통을 넘어 공감으로 기사의 사진

불통의 왕국으로 변한 세상

세상은 온통 소통을 원하고 있다. 새해 신문 지면의 논평은 주로 국가 지도자의 불통 리더십을 문제로 삼았다. 수직관계가 아니라 수평관계에서 소통할 수 있는 정치, 더 이상 국민을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주권을 가진 정치의 주인으로 보라는 바람이었다.

최고 지도자만 불통이었을까.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 틈도 주지 않는 답답한 세상을 향해 던진 젊은 세대의 서러움은 ‘안녕들’이라는 대자보 사건으로 여실히 드러났다. ‘철도 민영화’를 둘러싼 정부와 노조 간의 갈등은 마치 1980년대 민주화 투쟁으로 인해 학교 교정에 던져진 최루탄과 화염병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소통’을 원하는 세상의 방증일 것이다.

국내 정세만 그런 것은 아니다. 구한말 힘의 논리가 재현되고 있는 동북아 정세 또한 예외는 아니다. 내셔널리즘의 늪에 갇혀 주변국과 소통을 원치 않는다. ‘극 소용돌이(polar vortex)’의 남하로 인해 몰아친 북미의 한파만큼이나 차가운 세상이다. 영하 20∼30도로 꽁꽁 얼어붙은 이 땅을 녹일 수 있는 해법은 없는 것일까.

이어령 박사의 ‘생명이 자본이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50여 년 전 겨울 유난히 추운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방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얼어 있었다고 한다. 신혼의 썰렁함을 달래기 위해 사온 어항도 얼었고, 어항 속 금붕어도 살얼음 속에 화석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보다 못한 이 박사의 아내는 주전자에 물을 끓여 어항에 조금씩 붓기 시작했다. 그 후 어항은 숨쉬는 소리를 내면서 얼음이 녹았다. 방 안의 냉기를 생기로 만든 건 주전자의 끓는 물이었다고 저자는 말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북풍과 태양’이라는 동화가 생각났다. 북풍과 태양은 나그네의 외투 벗기기를 통해 힘을 자랑하려 했다. 기세등등한 북풍은 자신만만하게 찬바람을 불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려 했으나, 차가운 바람이 세게 불수록 나그네는 옷을 더욱더 힘껏 붙잡았다. 그러나 태양이 활짝 웃자 나그네는 땀을 흘리며 외투를 벗었다. 굳이 이 동화의 교훈을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렇다.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것은 차가운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바람이다. 그렇다면 불통으로 꽁꽁 얼어붙은 이 땅을 녹이는 따뜻한 바람은 무엇일까.

모두의 유익을 위해 노력해야

사람들은 더 이상 수직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수평관계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길 원한다. 기득권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 앞서 일하는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건 소통을 위한 열린 태도다. 열린 태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에 귀가 두 개이고 입이 하나인 것은 말하는 것보다 먼저 많이 들으라는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내가 한 번 말을 했다면 두 번은 상대방에게 기회를 양보하는 것, 말을 1분 했다면 2분은 들어주는 것이 소통을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 또한 소통을 넘어 공감으로 가는 길은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 후 서로가 아니라 모두의 유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가 아닌 ‘우리’를 위해 자신의 입장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에게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하다. 힘들지만 가치 있는 일이기에 반드시 해야만 한다.

조금은 늦어도 함께 가는 세상을 위해, 단절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 땅의 아픔을 위해, 열린 태도로 소통하길 원한다. 정부는 야당이 원하는 ‘한줄기 물도 마다하지 않는 바다’가 되기 위해 열린 태도로 대화의 물꼬를 트고, 기성세대는 안녕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열린 태도로 소통하며, 젊은이들의 실제적인 살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안녕하지 못한 2013에게 진짜 ‘안녕’을 고할 수 있고, 2014란 이름으로 다가온 올 한 해는 참으로 ‘안녕’한 날들이 될 것이다.

도원욱 (한성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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