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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경래 (7) ‘사카린 밀수’ 특종 보도에 이병철 회장 “만납시다”

[역경의 열매] 김경래 (7) ‘사카린 밀수’ 특종 보도에 이병철 회장 “만납시다” 기사의 사진

1963년 12월 제3공화국 출범 직후 경향신문은 ‘국회선 밝혀질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시리즈 기사를 냈다. 나는 당시 정치부장으로 취재를 지휘했다. 그중 ‘국민경제 망친 삼분(三粉)’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삼분이란 주요 생활 물자인 설탕·밀가루·시멘트를 가리킨다. 기사는 삼분을 생산하는 재벌이 가격 조작과 세금포탈 등을 통해 폭리를 취한다는 의혹 제기였다.

이듬해 1월 15일 박순천 의원이 국회에서 폭로함으로써 일반에 알려졌다. 삼분 폭리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국회가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가 여당의 반대로 유야무야됐다.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민주당 유창렬 의원은 삼성 등 재벌의 일부 의원 매수설을 제기했다. 나는 유 의원의 주장을 ‘폭리 의혹 점차 확대’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기업들은 명예훼손 혐의로 나를 비롯한 간부진을 고소했다.

어느 날 부산 주재기자로부터 첩보가 올라왔다. 삼성 계열의 한국비료주식회사가 사카린을 밀수하려다 벌금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국민들은 굶주리고 있었다. 재벌이 제 배를 불리기 위해 서민들 등치는 것을 감시하는 게 언론의 일이다. 국내 최대 재벌이 연관된 밀수사건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경제부 기자를 파견해 추가 취재했다.

한국비료는 66년 5월 공장 건설 용도로 받은 정부차관 4000여만 달러를 받았다. 이 자금으로 사카린 원료(OTISA) 2259포대 약 55t을 건설자재로 위장해 들여왔다. 한국비료는 이 원료를 다른 회사에 팔려다 6월 초 부산세관에 적발됐다. 부산세관은 이 사실을 검찰에 고발하지 않고 벌과금 2000만원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 66년 9월 15일 경향신문에는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이 보도됐다.

기사는 재벌기업이 밀수를 했는데도 정부가 벌금으로 사건을 종결했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민 여론은 들끓었다. 일주일 뒤 사카린 밀수사건에 대한 대정부 질의 중 김두한 의원이 국무위원석에 앉아 있던 정일권 국무총리, 장기영 부총리 등 여러 명의 각료를 향해 인분을 투척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카린 밀수 사건은 재수사 대상이 됐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언론계 한 선배로부터 이병철 회장이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전갈을 받았다. 곤혹스러웠지만 대화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이병철 회장과 오전 7시30분 서울 장충동 자택에서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어디서 취재했습니까?” 그는 정치세력의 사주를 받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듯했다. 나는 보도가 사회정의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식사 후 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신앙인의 정직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회장님, 제게 혹시 돈이 필요하면 장소, 액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때 주십시오.” 그 이후 이 회장에게 다시 연락한 일이 없다. 그럼에도 만남 이후 명절마다 삼성그룹에서는 선물이 왔다. 제일모직에서 나오는 양복지 등 고급 선물이었다. 선물을 흔쾌히 받을 순 없었지만 의전에 품위가 있다고 느꼈다.

밀수를 현장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은 93년 발간한 회상록에서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은 박정희 대통령과 이병철 회장의 공모 아래 정부기관들이 적극 감싼 조직적 밀수였다”라는 취지로 기록했다. 정경유착으로 인한 재벌비호였던 셈이다. 삼성 이병철 회장은 이 사건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관련자들은 구속돼 재판을 받았다. 한국비료는 국가에 헌납됐다.

정리=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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