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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만 칼럼] 준비된 통일과 준비 안 된 통일

[임순만 칼럼] 준비된 통일과 준비 안 된 통일 기사의 사진

“급작스런 통일은 위험하다. 통독은 긴 노력 끝에 온 것이지 갑자기 온 것 아니다”

연일 ‘중대제안’ 공세를 펼치던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전격 제안했다. 정부도 즉각 호응해 조기상봉 방침을 정하면서 이산가족 만남이 성사될 가능성이 커졌다. 1992년 남북기본합의를 이룰 때가 최고점이었다면 현재의 남북관계는 최저점의 상태이다. 북한이 연일 대화공세를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남북 해빙이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하는 타이밍이다.

실제로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다면 그를 계기로 많은 현안들이 하나씩 테이블 위에 올려질 것이다. 남북한 공히 관계개선을 통해 돌파해 나가야 할 현안들이 적지 않다. 전반적인 경제상황이 좋지 않고, 국제정세도 취약한 부분이 있다. 중국 경제성장이 정체돼 수출이 둔화되고 있고, 한·일관계 경색은 동북아 미래의 불안요인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북한의 노동력과 자원 활용 논의가 활발해지는 것은 우리사회의 새로운 경향이다.

모든 경제관계를 중국에 기대고 있는 북한으로서도 중국 경제침체에 대비하기 위해 남한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개성공단에 이어 이산가족상봉, 스포츠 교류, 금강산관광, 남북간 교역 확대, 문화협력사업, 군사적 합의 등의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을 다루는 최선의 전략은 어떤 것일까. 이와 관련한 해외 석학들의 의견은 대체로 “인내심을 갖고 남한의 시스템과 양립할 수 있게 북한의 시스템을 바꾸도록 격려하라”는 것이다. 2012년 10월 세계경제연구원이 개최한 ‘통일과 한국경제’를 주제로 한 국제회의 자료집(2013)을 보면 브래드 뱁슨 미국 존스홉킨스대 북한경제포럼 의장을 비롯해 많은 해외 전문가들이 통일에 대비해 남한이 추진해야 할 중요한 두 가지로 △평화협정 같은 조치를 통해 북한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조성하는 긴장을 감소시켜 줄 것 △정부 간 거래보다는 민간교류에 더 의존해 북한경제를 시장정책으로 유도할 것을 꼽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아직 이런 방향은 아닌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미국 공화당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을 접견한 자리에서 “장성택 처형 같은 사례로 볼 때, 북한은 예측이 불가능한 곳인데 점점 더 예측이 불가능한 곳이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서도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인 대화가 돼야지 대화를 위한 대화로 핵무기를 고도화하는 데 시간만 벌어 줘서는 안 된다”고 단호한 자세를 보였다. 박 대통령은 지난 22일 다보스 경제포럼에서도 “통일이 독재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일련의 견해들은 타당한 지적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한반도 문제의 핵심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전략을 보여주지 못한다. 북한이 비핵화하기를 바란다면 그럴 만한 구실을 주는 전략이 필요하다. 말로만 해서 북한의 비핵화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10년 이상 진행해온 6자회담에서도 풀지 못한 숙제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이 북한 주민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견해는 급박하다.

급작스런 통일은 점진적인 통합보다는 더 위험하고 비용도 훨씬 많이 든다는 것이 독일과 한국의 관련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이 견해를 수긍한다면 북한의 예측불가능성을 전환시키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통일에 대한 진지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독일통일이 갑자기 이루어졌다고 해서 남북통일도 갑자기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정확한 진단이 아닌 듯하다. 독일 통일은 20년간의 끈질긴 동방정책 끝에 갑자기 온 것이지, 노력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글로벌 무대에서 영향력을 갖는 정치지도자들은 기본적으로 인내와 배려의 가치를 중시하는 역량을 과시한다.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의도가 없거나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면 이산가족 상봉 이후의 황금 같은 시간은 다시 공백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편집인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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