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거부할 수 없는 ‘불안’… 性범죄자 신상 고지서의 역설 기사의 사진

서울 중랑구에 사는 박모(49)씨는 최근 들어 유독 유심히 챙기는 우편물이 하나 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성범죄자 인적사항이 담긴 ‘신상정보 고지서’.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받았지만 이웃 성범죄자의 사진과 주소 등을 알게 된 딸이 무서워하는 모습을 본 뒤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박씨 내외는 고지서가 도착하면 딸이 볼 수 없는 곳에 숨기거나 몰래 버리고 있다. 박씨는 26일 “여성가족부에 우편물을 보내지 말라고 요청했지만 현행법상 ‘안 받을 권리’가 없다고 하더라”며 “인터넷은 물론 모바일로도 찾아볼 수 있는 고지서를 굳이 우편물로 보내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성범죄 재발 방지 등의 목적으로 우편 배달되는 성범죄자 신성정보 고지서가 오히려 불안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취지는 좋으나 이를 받아본 어린 자녀들이 오히려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편물을 보내지 말아 달라는 민원이 잇따르고 있지만 선별적으로 보낼 규정이 없어 현재로선 ‘무조건’ 이 고지서를 수령해야 하는 상황이다.

서울의 한 지방법원에 근무하는 판사 A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A씨의 자녀는 신상정보 고지서를 본 뒤 거리에서 성범죄자와 비슷한 인상착의의 사람을 보거나 성범죄자가 사는 주소지 근처를 지날 때면 잔뜩 겁을 먹는다고 한다. 그는 “고지서가 집에 오는 대로 애들 몰래 찢어 버리고 있다”며 “취지는 이해하는데 이런 역효과 때문에 우편물을 받아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상정보 고지서는 2011년 6월부터 발송되기 시작했다. 성범죄자와 같은 주민센터 관할 지역에 거주하는 세대주 중 아동·청소년(초·중·고) 자녀를 둔 사람, 학원장, 어린이집 원장 등이 대상이다. 지역사회의 자체적인 성범죄 예방효과를 높여 성범죄 발생을 막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주민들 개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해당 주민은 모두 우편물을 수령토록 제도가 마련됐다. 특히 인터넷 ‘성범죄자 알림e’ 홈페이지는 물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도 공개되고 있어 반드시 우편 고지가 필요하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필요한 사람은 모두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국민들에게 유익한 정보이기 때문에 안전행정부에서 일괄 발송하고 있다”며 “신상정보 고지서를 받고 싶지 않다는 전화가 걸려오지만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고지서 수령을 거부하는 사람을 선별하기 위해서는 여가부도 거부자의 신상정보를 조회할 수 있어야 하는데 권한이 없다”며 “현행 제도에 미흡한 부분이 있어 보완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여가부는 수령 거부를 희망하는 사람에게는 우편물 대신 시범 실시 중인 ‘샵 메일’(#mail·공인인증서를 사용한 온라인 등기우편)로 보내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박요진 기자 tru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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