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장지영] 스포츠와 테러 기사의 사진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테러 위협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지난 1월 사이에 소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 3곳에서 잇따라 폭탄 테러가 일어난데 이어 북캅카스 지역의 이슬람 반군 세력이 소치올림픽에 테러를 가하겠다는 자살폭탄 협박 영상까지 공개됐다. 특히 ‘블랙 위도(검은 과부들)’로 알려진 테러 단체 멤버가 이미 소치에 잠입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테러에 대한 우려가 한층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 처하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토라 브라이트(호주)와 세스 웨스콧(미국) 등 몇몇 선수는 소치올림픽 불참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소치에서 테러가 났을 때 자국 선수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수송기 등을 대기시키기로 결정했다.

사실 스포츠 대회는 그동안 여러 차례 테러 단체의 과녁이 되어 왔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만큼 자신들의 존재와 요구사항을 알리기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사건이 1972년 9월 5일 발생한 서독 뮌헨올림픽 테러다. 당시 팔레스타인 무장 저항단체 ‘검은 9월단’ 소속 멤버 8명이 이스라엘 선수촌을 습격해 2명을 살해하고 9명을 인질로 잡았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수감된 팔레스타인 양심수 234명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이후 서독 정부는 인질 구출 작전을 펼쳤지만 인질 9명과 경찰 1명, 테러범 5명이 숨지는 실패로 끝났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뮌헨올림픽의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도 일어났으나 이스라엘 선수단의 추모식 이후 34시간 만에 재개됐다.

뮌헨올림픽 테러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국제사회의 핵심 이슈로 부각시키는 데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테러 진압 직후 이슬라엘은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보복 폭격을 가했고, 검은 9월단은 이에 대한 복수로 태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을 공격하는 등 피의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1996년 미국 애틀랜타올림픽에서도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7월 27일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폭탄이 폭발해 기자를 포함한 2명이 사망하고 11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 테러는 낙태와 동성애 반대주의자인 에릭 로버츠 루돌프(미국)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스포츠 대회를 겨냥한 테러는 좀더 빈번해졌다. 2002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는 폭탄 차량이 터져 17명이 부상했다.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단체 ‘자유 조국 바스크(ETA)’가 저지른 사건이다.

또 2010년엔 앙골라에서 열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대회에 참가하던 토고 축구팀이 앙골라 카빈다의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카빈다 해방전선’의 총격을 받아 3명이 다치고 9명이 부상했다. 그리고 내전이 끊이지 않는 소말리아에선 2011년과 2012년 잇따라 반군 ‘알 샤바브’의 공격을 받아 2011년엔 축구 대표팀 선수 1명을 비롯한 8명이 죽고 35명이 부상했으며 2012년엔 소말리아 축구협회장과 올림픽위원장 등 체육계 인사들과 기자 등 1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4월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도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진 체첸계 형제의 폭탄 테러로 3명이 숨지고 260명이 다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경기하는 동안엔 전쟁도 잠시 중단했던 고대 올림픽의 원칙이 현대에도 다시 한번 통용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소치올림픽 기간 동안 부디 선수나 관객 모두 안심하고 경기에만 충실할 수 있길 바란다.

장지영 체육부 차장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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