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남성현] 비영리·공공성의 의료체계라야 기사의 사진

고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의 눈썹 위쪽에 지름 1㎝ 정도 크기의 혹이 난 지가 여러 달째다. 두 주 전 딸아이를 데리고 몬트리올에 있는 한 병원에 가서 소견서를 받았다. 의사는 5분 정도의 간단한 수술로 이마의 혹을 제거할 수 있다고 했다. 다음 날 어떤 외과의원에 전화를 했는데 알고 보니 의료보험카드가 적용되지 않는 영리의원이었다. 수술비용이 최저 650달러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작년에는 딸아이의 사랑니 2개를 빼느라고 800달러가량을 지불해야 했다. 사랑니 발치는 이곳 의료보험이 보장해 주지 않는다.

加 사회의료보험과 영리병원

캐나다 몬트리올에는 주정부의 사회의료보험과 영리병원이 공존하고 있다. 시민권자와 영주권자, 그리고 필자처럼 노동허가증(working permit)을 갖고 있는 경우조차 사회의료보험의 혜택을 받는다. 그런데 이곳 사회의료보험의 문제는 ‘대기시간’이다. 딸아이의 경우 사회의료보험이 적용되는 병원에서 무료로 수술을 받을 수 있지만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할지 기약이 없다. 10여년 이상의 친분이 있는 한 지인이 이곳 의료체계의 치명적 결함을 내게 귀띔해 준 적이 있다. 지인의 직장 상사가 캐나다인이었는데 암 검사를 한 뒤 3개월 뒤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상사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암에 걸렸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작년 10월부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보건의료 정책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의 핵심은 크게 원격진료,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주식회사) 설립, 의료법인의 인수·합병 등 3가지다. 병의원의 접근성이 우리나라처럼 좋은 나라도 드문데 원격진료가 왜 필요한지 의문이다.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은 학교법인이 아닌 일반 의료법인들이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핵심적 사안이다. 쉽게 말해 병원이 주식회사를 설립해 메디텔(의료관광호텔), 여행사, 음식점, 유사의료행위 등의 부대사업을 운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의료법인의 인수·합병을 허용하겠다는 안은 병원을 기업처럼 다루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정부는 병원이 환자 진료를 거부할 수 없는 의료보험 당연지정제를 유지하고 있고 영리병원을 허용한 것이 아니므로 이런 정책이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각종 사회·시민단체는 정부 정책이 의료 민영화를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나는 정부 정책이 캐나다 식의 의료정책, 즉 사회의료보험체제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영리 병의원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을 갖고 있다.

무료병원은 기독교의 발명품

보건의료의 비영리성과 공공성을 ‘발명’한 주체는 기독교다. 4∼6세기의 교회와 수도원은 “내가 병들었을 때에 너희가 돌보았다”(마 25: 36)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지해 ‘무료 병원’을 발명했다. 372년 카이사레아 교회의 감독이었던 바실리오스가 설립한 병원은 문서적 증거가 명확한 최초의 병원이다. 4∼6세기 동안 비잔틴 로마제국(동로마제국)의 교회와 수도원은 수백개의 무료 병원을 설립했다. 서유럽의 경우도 5∼6세기 프랑크제국 이후 15세기까지 교회와 수도원이 병원 설립과 운영의 주체가 되었다. 15세기를 전후로 하여 시의회와 국가가 병원을 운영하기 시작했지만 비영리성과 공공성의 원칙은 현재까지도 서유럽 의료정책의 골격으로 남아 있다.

박애정신을 바탕으로 한 무료 병원은 기독교에 의한 기독교의 제도다. 경제성장 동력이니 산업 발전이니 하는 경제논리로 비영리성과 공공성을 바탕으로 한 의료체계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과 부합하지 않는다. 의료보험체계의 보장성을 더욱 확대해 나가고 이를 위한 재원을 확충하는 것이 기독교 정신을 따르는 길이다.

남성현 한영신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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