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의 샘] 정보화시대의 개인 기사의 사진

도둑이 들어 궤를 열고 상자를 뒤지는 것에 대비해 끈으로 묶고 자물쇠를 건다. 이것이 세상의 지혜이다. 그러나 큰 도둑이 들면 궤를 짊어지고 달아나면서 끈과 자물쇠가 헐겁지나 않을까 걱정한다. 그렇다. 세인들이 말하는 지혜란 그저 큰 도둑을 위해 재물을 쌓아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장자가 던진 통쾌한 역설이다. KB국민·롯데·NH농협카드 고객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새해 벽두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 카드사의 개인정보 유출 기사를 접하면서 불현듯 장자의 말이 생각났다.

개인정보의 유출과 노출은 어제오늘 있었던 일이 아니다. 옥션이나 신세계몰과 같은 쇼핑몰에서 수백만 건의 개인정보 유출이 있었고, 농협의 개인정보 유출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국민연금공단이나 KT와 같은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대형 포털과 대중적 커뮤니티 사이트의 해킹과 개인정보 노출 문제도 누차 논란이 되어 왔다.

인터넷과 금융회사를 이용하는 이들 대부분의 정보가 유출되거나 상시적으로 노출된 셈이다. 누군가는 개인정보가 아니라 공공정보가 되었노라고 자조했다. 하지만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대처와 후속조치는 늘 미온적이다. 당국자는 후속조치를 운운하고 해당 기관의 책임자는 카메라 앞에서 형식적인 사과만 표하면 그만이다.

해당 카드사는 보안 시스템 강화와 프로그램의 보강을 약속할 것이다. 다른 기업들도 보안 시스템 강화를 외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인 정보주체들에게 성가신 의무만 가중된다. 당장에 개인정보 유출 여부를 조회하기 위해 다시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이토록 잦은 이유는 무엇일까. 직원 보안 교육이나 통제 시스템, 또는 보안 프로그램만의 문제일까.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유출 당사자인 기업과 피해자인 정보주체들의 반응이 놀라울 정도로 무덤덤한 것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의 의식에 해답이 있다. 동양에서 개인의 개념은 아직까지 인식의 중심으로 들어오지 못한 듯하다. 물론 동양에서도 자아에 대한 각성은 일찍부터 있었다. 공자는 자아를 성찰하고 고양시키는 일에 누구보다 관심이 컸으며, 자신이 존중받기를 바라는 만큼 남을 존중한 세련된 개인 윤리의 소유자였다. 장자 역시 세상의 통속적 잣대와 편견을 거부하고 자아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였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사랑이 유난했던 양주(楊朱)가 이기주의자로 매도되고부터 동양에서 자아는 수신·함양의 목적 이외에는 주목받지 못했다. 자아에 대한 각성이 개인의 각성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를 막론하고 동양에서 개인주의에 대한 편견이 적지 않고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공통 현상을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로 좁혀 보더라도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근현대까지 늘 그래 왔다. 자아는 수준 높은 군자의 기본 요건으로서만 주목 받아 인격 함양만 요구되었다. 사회적으로 개인 개념이 주목받지 못했다. 때문에 올바른 가치관과 역량을 갖춘 사람이 국가와 민족의 번영에 이바지할 ‘재목’으로 인식되었을 뿐 하나하나의 주체로서 개인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지금도 사정이 나아진 건 없다. ‘참 나’에 대한 갈망이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개인이나 개인주의에 대한 바른 인식은 거의 없는 오늘의 상황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

근대의 길목에서 우리는 국가의 발전에만 관심을 갖고 온 힘을 쏟았던 경험이 있다. 그것이 지선(至善)으로 이해되었던 그러한 역사는 진행형일지 모른다. 아직도 우리는 개인의 중요성을 크게 각성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국가는 개인을 발전 동력의 하나로 생각하거나 통제 대상으로 여기고, 금융기업은 개인정보를 수많은 정보 속의 한 줄짜리 토막정보 쯤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정보주체들 역시 기술적 보안성만 보장된다면 자신의 정보를 제공하는 데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국가 기관이나 기업은 어려움 없이 정보주체들에게 각자의 정보를 요구한다. 그뿐이랴. 서슴없이 자의적 사용에 동의를 요구하며, 또 쉽사리 동의 받는다. 이처럼 개인의 중요성을 각성하지 않는다면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앞으로도 끊이지 않고 발생할 것이다.

국가도 개인에 대한 중요성을 새로이 인식하고, 법률로 그 정보의 보호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정보주체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광범하게 그들의 정보를 수집·축적하던 이제까지의 관행을 전면 재고해야 한다. 관리와 이용에 있어서는 더욱 신중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IT강국으로서의 장점을 내세워 보안 프로그램과 시스템 강화에만 힘을 기울인다면 그것은 큰 도둑을 위해 궤짝의 자물쇠를 단단히 채워 주는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이제 개인의 중요성을 주목할 때이다. 개인은 전체의 일부가 아니라는 칼 포퍼의 말을 곰곰이 새겨보아야 한다.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개인의 가치가 새로이 조명받는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모든 개인이 존중받고 그들의 정보 주권이 확고하게 보호받는 사회, 그 기반 위에 든든한 믿음을 쌓아가는 날이 머잖아 오기를 꿈꿔 본다.

이규필(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