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칼럼] ‘문화정책 3.0’ 창의진화를 기대한다 기사의 사진

“3D안경 쓴 문화대통령 아이콘 같이 창조문화의 문화생태계 조성해 나가야”

문화만큼 다의적 개념도 없다. 문화만큼 정치와 이념에 휘둘려온 영역도 많지 않다. 대표적 사례가 1981년 신군부 집권 당시 ‘국풍81’과 ‘3S정책’이다. ‘국민의 탈정치화’를 꾀하는 정치적 의도라고 모두들 뒤에서 수군댔다. 정권마다 문화코드도 달랐다. 해묵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논쟁을 비롯해 지배문화와 민중문화, 귀족문화와 기층문화 같이 우리 문화는 이항대립으로 존재했다. 그 사이 ‘국민을 위한 문화’는 뒷전에 밀렸다.

새해 문화정책이 국민 관심을 끈다. ‘문화융성’과 ‘창조문화’, ‘문화강국’에 이어 ‘문화가 있는 날’까지 나왔다. 대통령과 장관들이 문화를 언급하는 횟수도 부쩍 늘었다. 지난해 4월 대통령 자문기구 문화융성위 발족 후 문화융성에 무게가 실린 듯한 느낌이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배부른 소리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문화융성은 국정 기조의 한 축이 되고 있다. 그만큼 문화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이 각별한 듯하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되돌아보면 행간이 엿보인다. 이명박 후보가 ‘경제대통령’을 선점해버리자 박근혜 후보는 ‘문화대통령’으로 맞불을 놓을까 고민한 적이 있다. 종국에 ‘노무현 경제실정’에 대립각을 세우는 ‘경제대통령’만큼 정치적 파괴력은 없다며 이를 접어야 했다. 이후 에도 ‘문화대통령’에 대한 아쉬움이 매우 컸다는 후문이다.

지난달 29일은 ‘매달 마지막 수요일’로 지정된 올해 첫 ‘문화가 있는 날’이었다. 박 대통령은 어린이들과 애니메이션 ‘넛잡’을 관람했다. 북미 3470여개 상영관에서 개봉된 한국 영화로는 최대 규모 해외 개봉작이었다. 그런데 3D 안경을 쓴 대통령이 퍽 인상적이었다. 지겨운 정치판을 떠나 ‘문화대통령’ 아이콘을 만들어도 되지 않겠나 싶다.

대통령 덕분에 ‘문화가 있는 날’은 관심사가 되었다. 문화갈증을 느끼는 직장인들에게 한 달에 한 번은 영화나 공연, 전시회, 스포츠, 문화재를 싸게 관람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요즘 표현으로 ‘불금’(불타는 금요일)이나 ‘황토’(황금 같은 토요일)가 아닌 평일에도 문화를 즐기도록 한다는 문화부의 아이디어는 어느 정도 적중했다.

하지만 문화정책이 문화 디바이드, 즉 문화격차를 유발하면 안 된다. 이번 ‘문화가 있는 날’은 ‘돈은 있지만 시간이 없는 직장인’만을 위한 것이었다. 금전적 지원은 또 다른 문화소외를 낳을 수 있다. 김대중정부 이후 문화단체 지원은 이념 편향성을 증폭시켰고, 밥그릇 싸움 속에 문화계는 상처와 갈등만 남았다. 때마침 정부가 중산층 분류 지표를 소득 기준만이 아닌 통계 기법인 다차원 척도(MDS)를 적용한다니 ‘문화복지’를 비중 있게 포함시키는 게 좋을 것 같다. 빈부차가 문화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회적 약자를 위한 ‘문화 바우처’도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관 주도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한류나 K팝 열풍이 어디 관 주도로 불었던가. 창의와 끼를 펼친 민간 부문 역할이 더 컸다. 한류열풍 주역으로 KBS ‘겨울연가’에서 MBC ‘대장금’까지 ‘대박 프로그램’,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 등을 탄생시킨 민간 연예기획사를 더 꼽을 수밖에 없다. 또 한류 관광객이 몰리는 춘천 남이섬을 가보라. 2017년 30조원 달성목표인 창조관광도 문화의 힘이라야 가능하다. 문화 규제를 풀고 창의적 저작권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다.

이제 문화정책은 새 문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일과성 이벤트가 아니라 ‘문화 접근성’을 높이는 ‘보편적 서비스’라야 한다. 마치 물과 공기같이 문화는 일상적 삶에 녹아들어야 한다. ‘문화가 있는 날’ 정책이 앞으로 어린이나 청소년, 노년층에까지 확장되면 좋겠다. 문화적 시공간(時空間)이 더 많아야 한다.

마치 웹 3.0같은 ‘문화 3.0 유비쿼터스 정책’이랄까. 막 시작한 ‘문화가 있는 날’이 창의적 진화를 더 해야겠다. 국민에게 ‘문화가 있는 삶’을 앞당기는 첫 디딤돌이 되길 기대한다.

김경호 논설위원 kyung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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