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김훈] 통상임금 판결의 숙제 기사의 사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이 향후 노사관계에 미칠 부정적 파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경영계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돼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가중될 것을 우려한다. 노동계는 노사 합의가 있을 경우 신의칙에 입각해 3년 이내의 범위에서 임금의 소급 청구를 제한한 것이 못내 불만이다. 재직자 요건에 준해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신의칙의 적용을 새로운 노사 합의가 체결될 때까지로 ‘해석’하는 정부의 지침에 대해서는 소송도 불사할 태세다.

하지만 올 춘투에서 노사분규가 실제 개별기업 단위에서 대규모로 강도 높게 분출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 노조는 기업별 노조로서 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경영 여건을 도외시한 채 기업이 도산위기에 내몰릴 정도로 해당 기업의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관철시키고자 한다면 이는 노조의 존립 기반 자체를 허물어뜨리는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시간당 임금 단가가 올라가더라도 그에 비례해서 노동생산성을 일정하게 끌어올린다면 인건비 부담의 증가가 곧바로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 문제도 노사가 공멸을 피하고자 한다면 개별기업 단위에서 노사 간 자율적으로 적정한 수준에서 적절한 해법이 찾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통상임금 판결은 개별기업 단위에서 노사가 상생과 협력의 노사관계를 새로이 다질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산입돼 시간당 임금 단가가 올라가더라도 여전히 통상임금 판결의 본질적 의의인 장시간 노동관행에 대한 규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에서 장시간 노동체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은 이 체제가 기업 내 노동시장에 편입돼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과 기업의 이해관계가 서로 부합되는 데 따른 구조적이며 합목적적인 체제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경기 호황 국면에서 일손이 부족할 경우 높은 고정비용 부담이나 경직적인 해고 요건으로 인해 신규로 정규 인력을 늘리기보다는 이미 보유하고 있는 기존 정규 인력에 의한 연장근로를 선호하게 된다. 정규직 노동자들 입장에서도 초과근로, 휴일근로, 심야근로 등에 적용되는 할증률로 인해 휴가를 취하기보다는 보다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연장근로를 선호하게 된다.

또한 경기 후퇴 국면에서는 소정외근로인 잔업의 단축으로 고용량이 조절되며 이는 기업 내 노동시장에 편입돼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과 소득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기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시간당 임금 단가가 상향 조정된다 하더라도 장시간 노동관행은 해소되기 어렵다. 나아가 대기업·유노조·정규직 노동시장과 중소기업·무노조·비정규직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의 골은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경영계는 정년 연장에 따른 연공 임금의 경직성을 완화하기 위해 직무급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직무’ 중심으로 기업이 조직을 관리할지 ‘사람’ 중심으로 관리할지 아니면 양자를 혼합한 형태를 취할지는 경영 여건에 따른 최적의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하는 가운데 기업이 스스로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할 문제이지 정부가 나서서 일률적으로 강제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 노동시장이 기업별로 분단돼 있는 가운데 개별기업 단위로 임금체계를 직무급 중심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절로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기업 규모나 노조 유무 그리고 고용형태와는 무관하게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의 원칙을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 노동시장에서 어떻게 구현해 나갈 것인가. 통상임금 판결이 노·사·정 모두에게 던지고 있는 숙제다.

김훈 한국노동연구원·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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