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김기석] 고통의 옹두리 기사의 사진

토요일 오후 세종홀에서 열리고 있는 박노해의 사진전에 다녀왔다. 그는 한때 혁명을 꿈꾸다가 무기수로 복역하기도 했고, 이후에 시인으로서의 명성도 얻었으나, 지금은 가난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땅을 찾아다니며 평화활동을 벌이는 평화운동가이다. 그가 틈틈이 찍은 사진과 사진에 덧붙인 에세이가 어울려 아름다운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풍요의 신기루를 좇아가는 현대 문명의 저편, 척박한 삶의 자리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살피는 동안 마음이 고요해졌다. ‘다른 길’이라는 전시회의 타이틀은 그가 벼랑을 향해 질주하는 문명의 대안이 어디에 있는지를 넌지시 가리키고 있었다.

사진전 ‘다른 길’이 전하는 희망

사람들은 밖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듯 각각의 사진 앞에 오래 머물렀다. 내면의 울림이 컸기 때문이리라. 천천히 흐름을 따라가다가 낯선 정조가 느껴지는 사진 한 장과 마주쳤다. 마치 폴 고갱이 그린 타히티 풍경화 한 점을 흑백으로 바꿔놓은 듯한 사진이었다. 가로로 삼 분할된 화면의 윗부분은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있는 소박한 마을이 원경으로 담겨 있었고, 맨 아래 부분은 물기를 머금고 있는 땅에 듬성듬성 꽂혀 있는 키 작은 나무 몇 그루가 채우고 있었다. 화면 중앙은 잔잔한 물결 위로 고즈넉한 햇살이 번지고 있는 야트막한 바다 풍경이었다. 그 풍경을 낯설게 만든 것은 겨우 발목에 닿는 얕은 물속에서 상체를 잔뜩 구부린 채 뭔가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의 실루엣이었다.

사진 옆에 붙어 있는 조각글을 통해 그곳이 인도네시아의 반다아체에 있는 울렐르 마을임을 알 수 있었다. 2004년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갔을 때 맨 먼저 해일이 덮쳐 폐허로 변한 마을이었다. 비극이 일어난 직후 그곳을 찾았던 작가는 그 마을의 스물다섯 살 청년 사파핫이 손가락만한 나무를 홀로 바닷물 속에 심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이 어린 바까오 나무가 지진 해일을 막아줄 순 없겠지요. 하지만 자꾸 절망하려는 제 마음은 잡아줄 수 있지 않을까요.” 무릎을 꿇은 채 나무를 심던 그 청년은 끝내 파도처럼 흐느꼈다고 한다. 8년이 지난 후 작가는 다시 그곳을 찾았고, 그곳에서 놀라운 광경과 맞닥뜨렸다. “그 가느다란 바까오 나무가 파도 속에서 자라 숲을 이루고 있었고, 그는 오늘도 붉은 노을 속에 어린 바까오를 심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자꾸만 절망의 나락을 향해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나무를 심던 사람, 그러다가 끝내 파도처럼 흐느낄 수밖에 없었던 사람 사파핫. 그는 희망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애쓰고 공을 들여야 오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소한 일에도 낙심하고, 실속을 차리기 위해 반지빠르게 처신하고, 남에게 뒤질세라 발서슴에 여념이 없는 이들은 사파핫의 그 무던한 시간을 알 수 없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런 사파핫 류의 사람들이 더러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그들이다.

절망의 나락에서 견뎠던 시간들

‘또 하나의 약속’이라는 영화가 세간의 화제이다. 삼성 반도체에 입사한 지 2년 만에 백혈병을 얻어 2년여의 투병 끝에 결국 세상을 떠난 황유미씨와, 딸의 죽음이 산업 재해임을 인정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과 그 뒤에 숨은 거대 기업을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벌여온 아버지 황상기씨의 이야기는, 거친 세상살이에 지친 이들과 ‘을’의 자리에서 살 수밖에 없는 많은 이들에게 무지근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황상기씨가 갖은 회유와 협박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다시는 딸과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 때문이었으리라. 그는 딸의 때 이른 떠남이 그의 영혼에 새겨놓은 고통의 옹두리를 희망의 표징으로 바꾸어 놓았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나날이다.

김기석 청파감리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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