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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염운옥] 죽음을 선택할 권리

[글로벌 포커스-염운옥] 죽음을 선택할 권리 기사의 사진

지난 13일 벨기에에서 미성년자의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로써 벨기에는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미성년자의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가 됐다. 네덜란드는 12세 이상부터 허용하지만 벨기에는 최초로 연령 제한을 없앴다. 벨기에는 2002년부터 안락사를 허용해 왔다. 현재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나라는 벨기에 이외에도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가 있다. 미국 오리건 주에서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고, 콜롬비아와 스위스에서는 공식적으로 합법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묵인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 통과에 앞선 여론조사에서는 75%가 찬성했다. 찬성 입장에서는 개정법으로 불치병으로 시한부 삶을 견디고 있는 미성년 환자가 안락사가 허용되는 18세까지 고통을 감내하지 않아도 되며, 인간답게 죽을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개정법은 18세 미만 미성년자에게 자신의 상태와 안락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을 요구하고 있고, 전문의사의 판단과 부모의 동의를 요구하는 등 엄격한 요건 하에 시행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벨기에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 지도자들은 공동 성명을 내고 미성년자 안락사는 원치 않는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 소아과 의사 160명도 공개서한을 작성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현대 의학이 고통을 말기 환자의 고통을 충분히 덜어 줄 수 있기 때문에 긴급한 필요가 인정되지 않으며, 미성년자가 안락사를 정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동의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안락사 문제는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다. ‘좋은 죽음’이라는 뜻의 ‘안락사(Euthanasia)’라는 명칭은 ‘우생학(eugenics)’의 불편한 역사를 상기시킨다. 나치는 유전병자손예방법에 의해 육체적·정신적 장애자에 대한 불임수술과 안락사가 시행했다. 600만 유대인의 죽음을 낳은 홀로코스트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우생 정책과 안락사 프로그램을 통한 ‘살 가치가 있는 생명’과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의 ‘선별’ 역시 나치의 대표적인 악행이었다.

나치시대 안락사가 국가에 의한 강압적 정책으로 사실상 ‘살해’였던 반면, 오늘날 안락사는 자유의사에 의한 개인의 선택이라는 점이 다르다. 안락사는 약물을 투여해 직접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 등 생명연장 장치 사용을 중단해 죽음을 앞당기는 ‘소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소극적 안락사는 환자 스스로가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힐 경우 죽음의 선택이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는 방식이라고 보아 ‘존엄사’로 부르기도 한다. 사실 안락사나 존엄사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난해 11월 프랑스에서 80대 노부부가 사법 당국에 ‘안락사와 조력자살 합법화’를 촉구하는 편지를 남기고 동반자살해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은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아무르’를 연상시킨다. 영화는 치매에 걸린 아내의 목숨을 남편이 거두어주는 노음악가 부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주체이고 싶다는 욕망, 극진한 사랑의 표현으로서 동반자살은 찬반 여부를 떠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였다.

한국에서도 2009년 김 모 할머니의 첫 존엄사 판결 이후 연명치료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 최근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입법화하자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현재 제시된 해법으로는 환자가 사전의료의향서에 심폐소생술 등 받고 싶지 않은 의료행위를 미리 선택해 문서로 남기는 방법이 있으며, 일부 대학병원이 이를 도입하고 있다.

안락사 논쟁은 결코 멀고 낯선 것이 아닌 죽음, 찬란한 삶의 한가운데 검은 입을 벌리고 있는 죽음을 새삼 상기시킨다. 죽음을 의식하며 삶을 받아들이기. 이 좁은 길을 가야 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염운옥 고려대 연구교수·역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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