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인생 50주년 기념 무대 ‘춤의 귀환’ 올리는 국수호 기사의 사진

격렬하지 않은 몸짓으로 우리 춤의 미래 얘기한다

전주농고에 다니던 열여섯 살의 그는 농악반에서 장구 등 악기를 익혔다. 전주권번(券番)의 춤 사범이었던 정형인으로부터 남무(南舞·기생들이 추던 춤)를 배웠다. 이때부터 파란만장한 춤 인생이 시작됐다. 다음달 5일부터 7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춤 50주년 기념무대 ‘춤의 귀환’을 마련하는 무용인 국수호(66). 그를 지난 14일 강남구 역삼로 디딤무용단에서 만났다.

공연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인 그에게 춤 인생 50년에 대한 소감부터 물었다. 스스로를 “복 받은 사람”이라고 부른 그는 “스승들을 잘 만났다.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1962년 국립무용단에 입단한 그는 박금슬 송범 한영숙 이매방 김천흥 박병천 등 쟁쟁한 무용인에게서 우리 춤의 멋과 맛을 익혔다. 서라벌예대에서는 무용, 중앙대에서는 연극, 중앙대 대학원에서는 민속학을 전공하며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다.

그는 전통무용계의 스타다. 88서울올림픽 개막식과 2002한일월드컵 개막식 공연의 안무를 책임졌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 역대 대통령 취임식 안무도 도맡았다. 또 국립무용단 단장, 서울예술대 교수, 중앙대 교수 등을 지내며 행정과 학계를 넘나들었다.

“단지 춤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종합예술로서 한국무용을 발전시키고 표현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젊은 시절 국악은 물론이고 서양음악도 배우고 연극과 민속학을 공부한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죠.”

한국무용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기까지 그는 지독한 연습벌레였다. “국립무용단이 1973년부터 직업무용단으로 개편된 후 이듬해 ‘왕자 호동’을 시작으로 10년간 20여 편의 작품에서 주역을 맡았어요. 당시 하루에 15시간 이상 연습을 했지요. 기승전결이 있는 춤의 문학성을 구현하려고 애썼는데, 모자라는 부분이 있거나 개선할 점이 있으면 늘 기록으로 남겼죠.”

한국에서 열린 세계정상회의 행사 때 안무를 맡기도 한 그는 130여 국가를 순회하며 한국 춤을 세계에 알린 주역이기도 하다. “격렬하면서도 현란한 서양무용에 비해 섬세한 가운데서도 정중동(靜中動)의 열정이 숨어있는 우리 춤의 매력에 외국인들이 반하더군요. 이런 관점에서 춤의 한류를 위해 계속 연구해야 돼요.”

이번 무대는 그의 춤 인생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자리다. 5일 오후 7시에는 ‘축무의 밤’이라는 주제로 국수호의 독무에 이어 안숙선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과 김영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의 특별공연이 펼쳐진다. 이어령 배재대 한류문화산업대학원 석학교수,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등이 패널로 나와 국수호의 예술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6∼7일 오후 8시에는 ‘동행, 사제의 밤’을 주제로 제자들의 헌정 무대가 펼쳐지고 김광숙 전북 무형문화재 제48호 예기무 보유자, 김매자 창무예술원 이사장, 배정혜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등이 특별출연한다. 공연에서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는 모습을 담은 ‘한량춤’, 판소리 ‘적벽가’를 바탕으로 한 ‘용호상박’, 봄 향기를 전하는 ‘춘설’ 등을 선사한다.

“중국에는 경극, 일본에는 가부키 전용극장이 수두룩한데 한국에는 우리 춤 전용극장이 없어요. 서양식 무대에서는 한국 춤만의 독특함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어려워요. 전통예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가무악(歌舞樂)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무대가 꼭 필요해요. 한국 춤의 귀환을 위해 집을 새로 짓는다는 생각으로 이번 무대를 구상했어요.”

50년 세월 동안 한국 창작무용의 개발과 보급에 앞장서며 숱한 무대를 올린 그지만 아쉬움은 없을까. “전통춤이 젊은이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다 우리 책임인데, 영혼을 울리는 춤을 보여주지 못하고 서양음악 위주의 교육도 문제가 있다고 봐요. 무용인은 오직 춤으로 말할 뿐이에요.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를 얘기하는 무대를 위해 열심히 뛰어야겠지요.”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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