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문화 대중화 전도사’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 직언직설 기사의 사진

“역대 정권 편가르기에 농락… 문화인들 독립선언 해야”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67)은 처음 만나도 전혀 낯설지 않은 느낌을 준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에다 환한 미소는 묘한 친근감을 자아낸다. 독특한 외모와 목소리에 담긴 열정은 ‘천생 아티스트구나’ 하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지난 6일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5층 집무실에서 만났다. 근 1년 만에 다시 만난 그는 여전히 의욕과 정열이 넘쳐흘렀다. 취임 후 매일 아침 ‘첫 출근 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고 한다. 1시간40여분의 인터뷰 후에도 오페라극장 1층 객석을 함께 돌면서 독특한 성장 과정과 직업적 경험, 예술의전당 운영안, 문화정책 방향 등 평소 생각들을 솔직하고 또 거침없이 쏟아냈다.

-취임 1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나.

“취임 후 이벤트를 많이 했다. ‘가곡의 밤’도 하고 카페에서 ‘노래 있는 서비스’도 했다. 오페라와 뮤지컬에다 힐링 아카데미까지 차별화된 서비스를 하려 노력했다. 노블회원제도 처음 시작했다. 노령화시대에 70세 넘은 노인들이 갈 곳이 없다. 품격 있는 노년을 위해 노인들에게 혜택을 드리려 한다. 벌써 몇 천명이 가입했다. 앞으로 창작 뮤지컬과 창작 오페라도 더 나와야 한다. 외국인들이 ‘이것이 대한민국의 음악이고 오페라구나’라고 느낄 콘텐츠를 더 개발해야 한다. ‘우리만의 것’을 개발하는 그것이 ‘국가적 어젠다’라고 생각한다.”

-‘가곡의 밤’ 사회를 본 이유는.

“1970년 TBC에 입사해 가곡 프로그램인 ‘내 마음의 노래’를 연출했었다. 당시 인기가 상당했다. 그런데 지금 주변에 가곡들이 사라진다. 모든 방송사에서 가곡 프로그램이 다 없어졌다. 가곡은 소중한 우리 문화자산인데 우리 대(代)에서 없어질 것 같더라. 가곡을 다시 살려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 취임 후 5회 공연을 했다. 지상파와 스카이라이프로 방송됐다. 다행히 가곡이 없어진 게 아니고 잠깐 잊어버렸던 것뿐이더라. 그래서 보람이 있다. 올 여름에 횟수를 더 늘리려 한다.

봄에 동요제도 한다. 동요도 다 없어졌다. 어린이에게 노래를 시키면 어른들의 댄스곡을 부르지 않는가. 동심과 거리가 멀다. 어린이다운 노래를 하는 동요제를 4회 정도 해볼까 한다. 늦여름에서 초가을까지 야외음악당에서 공연하면 별도 초롱초롱 뜨고 아주 잘 어울릴 것 같다.”

-문화융성으로 가는 지름길은.

“매년 관광객 1000만명이 찾는 제주도를 가보라. 낮에는 골프도 치고 관광을 다닌다지만 밤에는 갈 곳이 없다. 볼 만한 공연이 하나도 없고 밤에는 공연장도 닫힌다. 제주도만이 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 관광객들이 보게 해야 한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뉴욕은 밤에 오페라를 보게 만든다. 관광객들은 뉴욕 문화를 즐기고 돌아간다. 예술의전당과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모두 관광객들에게 대한민국의 문화를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외국 작품만 공연하면 관광객들이 ‘이건 한국의 것이 아닌데’ 할 것 아닌가. 외국 작품을 배척하자는 게 결코 아니다. 지금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것이 뮤지컬이다. 우리 수준이면 창작뮤지컬을 만들 수 있다. 오페라 인재들이 많이 나왔다. 작곡도 나올 때가 아닌가. 노력을 하지만 아직은 좀 그렇다. 작품 하나라도 우리 스스로 ‘그 오페라 참 좋더라’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문화예술이 어떤 개념이라 생각하나.

“배가 고프면 경제가 해결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마음이 고플 때가 있다. 그것은 문화가 해결해야 한다. 아무리 부자라고, 돈이 많다고 마음도 부자는 아니다. 마음은 허전하다. 또 아무리 가난하다고 마음까지 가난하지는 않다. 정신의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것이 문화다. 나라의 품격은 문화가 말해준다. 잘사는 집에 가보면 알지 않는가. 서재에 꽂힌 책,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면 그 사람의 수준을 금방 알 수 있다. 아무리 가난한 집에 가도, 소찬을 내놓아도 글씨 하나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그것이 문화다. 인간의 정신적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것이 문화이고, 한 나라의 국격을 세우는 것도 문화다. 역사적으로 아무리 로마를 침공해도 결국 로마문화 때문에 모두 스스로 물러날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 문화의 힘은 바로 그런 것이다.”

-요즘 문화예술계를 어떻게 보나.

“너무 분열되어 있다. 역대 정부들이 문화인들을 줄 세웠다. 문화인일 뿐인데 좌익, 우익이 무슨 필요 있나. 노래하고, 그림 그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기 분야에서 표현하면 되지 않나. ‘저 사람은 우리 편 아니야’는 식으로 한다. 노무현정부 때 문화부 장관을 하다 나중에 ‘시’라는 영화를 만든 이창동 감독이 2010년 영화진흥위에 시드머니를 신청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0점을 받았다. 그 후 63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얼마나 해외에서 우스개가 되었겠나. 한국에서 0점 받은 작품이 외국에서 상을 받았다. ‘저 사람이 만든 것은 보지 말라’는 것 아닌가.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나도 실감했다. 15년 미국생활보다 33년 살았던 한국에 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아직도 문화계는 진입 벽이 너무 높다.”

-문화예술계에 대한 지원은.

“문화인들이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에 줄서지 말자’고 독립선언을 해야 한다. 정부가 그동안 잘 보인 사람들에게만 예산을 주었다. ‘저 사람은 주지 말고 우리 편만 주라’는 편가르기를 역대 정부가 했고, 문화예술인들이 여기에 놀아났다. 문화예술계도 반성해야 한다. 미국에는 문화부가 없는 대신 민간 문화예술위원회가 있다. 문화를 정부가 주도하면 문화가 정치에 줄서게 된다. 그러면 문화 발전은 힘들다. 문화인 스스로 활동해야 한다. 정부 예산을 갖고 하다 보면 공무원들에게 잘 보여야 되고, 정부는 또 돈을 주었으니 끝까지 감사를 해야 하지 않나. 영국 스타일이 좋다. 소위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 즉 정부가 문화에 돈을 투자해주되 팔 길이 정도 약간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밀착하지도, 간섭하지도 않는 원칙이다. 문화인 스스로 활동해야지 정부가 시시콜콜 간섭하면 문화가 예속된다. 또 문화인들 간 파벌을 만들어 서로 싸우게 만든다.”

-바람직한 문화정책은.

“정부는 민간인들이 서로 문화를 발전시키도록 도와주고, 문화를 도와주는 그 회사를 지원해야 한다. 바로 간접지원이다. 미국은 간접지원을 한다. 미국의 모든 극장은 기부자의 이름을 붙인다. 우리는 그것을 안 한다. 돈 있는 사람이나 기업인들이 건물 지어 기부자 이름을 넣으려다간 큰일이 나더라. 예술의전당도 150억원을 출연한 CJ이름을 넣었는데 일부 인사들이 엄청 반대했다. 민간인들이 문화예술에 도움을 주고, 또 정부는 그 회사를 도와주고, 그래서 민간인끼리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문화가 발전하도록 하는 게 맞는 방향이다. 르네상스 당시 귀족들이 돈을 내 일으킨 게 문예부흥 아닌가. 너무 정부 예산에 얽매여 있는 게 문화 발전의 저해요소다. 이제 문화정책은 문화와 행정이 조금 떨어지도록 하는 것이 맞다. 민간 스스로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하고, 정부는 조용히 간접 지원하는 방향으로 문화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시민들의 문화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예술의전당 연간 관람객이 300만명에 달한다. 취임 후 50만명이 더 늘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다음으로 세계 2위다. 그런데 늘 오던 사람만 온다. 관람 가격은 높은데 클래식에 대한 이해는 그리 높지 않다. 먼저 많은 시민들이 접근하기 쉬워야 한다. 그래서 취임직후 영상화 사업을 시작했다. 섬 등 취약지역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공연이라도 비행기 타고 와서 볼 수 없지 않은가. 문화 소외지역에 순수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영상화 사업이다. 뉴욕의 메츠 등에서도 한다. 뉴욕에서도 처음 오페라와 발레, 전시회를 영화같이 촬영해 타 지역 문예회관에서 상영하자는 제안을 하자 미국 공연계가 거세게 반대했다. 그러나 메츠 CEO가 ‘한번 해보자. 관객이 줄면 중단하겠다’며 시행했다. 그런데 볼티모어나 아칸소 주민들이 뉴욕 메츠의 공연 영상을 보더니 ‘저 오페라 죽기 전 뉴욕에 가서 한번 보고 싶다’고 했다. 오히려 공연문화 저변이 확대됐다.

예술의전당에서 국립오페라단이 사흘 공연하면 5000명이 온다. 하지만 영상화하면 5만명, 50만명이 더 공연을 본다. 비용은 크게 발생하지 않지만 전 국민이 오페라를 보고 즐길 수 있다. 지방 200개 문예회관의 가동률은 20%가 안 된다. 지역민들이 공연을 보게 하는 것이 문화융성의 지름길이다. 결코 공연은 문화 엘리트만의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하게 해야 한다.”

-‘문화가 있는 날’ 프로그램은.

“시민들이 무료로 또 저렴하게 발레, 오케스트라, 오페라를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 해설이 있는 클래식 문화도 만들어가겠다. 가곡은 가장 쉬운 클래식이다. 모든 사람이 접근하기 쉽고 노래하기도 쉽다, 한국인 정서가 잘 배어 있다. ‘해설 있는 클래식’ 공연같이 ‘마지막 수요일과 토요일에 개최하는 콘서트’, 즉 ‘마수토콘서트’로 보다 많은 사람이 클래식을 즐기도록 하겠다.”

-시민들의 문화 즐기기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나.

“전시회는 대관전시가 많다, 대관하는 업체에 금액을 반액으로 해 달라기가 어렵다. 대신 대관시간을 연장하면 전시 사업에 지장이 없고 시민들도 반값으로 즐길 수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미술공부를 안 시킨다. 그림공부가 상당히 어렵다. 비싸기도 하지만 어렵기도 하다. 회화에서 구상은 좀 낫지만 추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전시회에서 작가가 나와 해설하는 프로그램을 시도할 생각이다. 거리상 접근성이나 입장료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뭔가 알아야 오지 않겠나. 광주비엔날레를 단체관람하러 온 시민들이 전혀 감동을 못 느끼고 한두 번 훑어보더니 나가더라. 한번도 이전에 본 적 없으니 그렇지 않겠나. 교육이 그래서 중요하다. 학교에서 예술교육을 해야 문화의 맛을 알고 극장을 찾아간다. 예술의전당이 그런 교육에 착안해 공연을 비디오화하고 학교에 보급할 생각이다.”

-예술의전당이 갖는 차별성은.

“국립극장이나 세종문화회관과 인프라가 다르다. 한마디로 전문화된 인프라다. 결코 다목적홀이 아니다. 콘서트홀은 오케스트라에, IBK홀은 체임버 음악, 오페라극장은 오페라, CJ홀은 뮤지컬을 공연하도록 설계·건축되었다. 외국 예술인들도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하기가 좋다고 인정한다. 전문화된 인프라 장점 때문에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다. 다른 곳과 같이 오페라 가수의 소리를 인공적으로 확성하지 않고 자연음으로 나오게 한다. 그렇게 전문화된 장르들을 공연한다.”

-향후 계획은.

“우리 문화를 보려는 외국인들이 예술의전당에 많이 오도록 해야 한다, 아직까지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 관광객들이 기껏 인사동이나 남산의 한옥마을을 찾아간다. 대한민국의 공연 수준을 보기 위해 예술의전당을 찾아야 한다. 남은 임기 동안 내가 해야 할 숙제다. 외국인들로부터 ‘한국은 경치가 좋더라’가 아닌 ‘대한민국은 공연과 클래식 문화가 좋더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그것이 예술의전당의 향후 역할이다. 외국인이 많이 찾는 예술의전당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김경호 논설위원 kyung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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