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남성현] 외세가 우리를 지켜주진 않는다 기사의 사진
선지자 예레미야를 읽다가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남유다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다니, 너는 어쩌면 그렇게 지조도 없느냐? 그러므로 너는 앗시리아에게서 수치를 당했던 것처럼 이집트에게서도 수치를 당할 것이다… 네가 의지하는 것들을 나 주가 버렸으니 그들이 너를 도와주어도 네가 형통하지 못할 것이다.”(렘 2:35∼36·표준새번역)

남유다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했다. 주전 722년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할 때 남유다는 가까스로 위기를 넘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히스기야왕 때에 앗시리아의 산헤립의 침공을 받아 멸망 직전에까지 이른다. 주전 626년 바빌로니아가 탄생한 이후 남유다는 전통적인 강대국 이집트와 신흥강대국 바빌로니아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한다. 그런데 믿었던 이집트는 끝내 남유다를 도와주지 않았고 586년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면서 남유다는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 예레미야는 국가가 몰락해 가는 과정을 목격하면서 외세에 의존하지 말고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라고 50여년간(627∼580년)이나 부질없이 외쳐야 했다.

강국에 의존하다 멸망한 남유다

우리나라와 남유다의 공통점이 있다면 강대국에 둘러쌓여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외세에 대한 의존은 커다란 대가를 치를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구한말 동학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 일본군이 제물포에 상륙하는 빌미를 제공했고 이후 우리 민족은 나라마저 잃게 되었다. 기독교 동맹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비잔틴 기독교제국(동로마제국)은 서방 기독교 세계에 군사원조를 요청했고 그 결과 1096년부터 십자군 원정이 시작된다. 하지만 기대와는 거꾸로 1204년 서방의 4차 십자군은 동로마제국의 수도를 약탈했고 이후 동로마제국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지난 정권 말기 추진하다 중단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일본의 평화헌법 폐기 및 집단 자위권 행사·상륙용 해병대 창설 등 한반도와 동북아는 마치 폭풍전야와 같은 상황이다. 1592년 임진왜란과 19세기 말 일제 침략사를 되돌아보면 일본 해병대가 어디에 상륙하게 될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일본 아베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이런 변화를 대놓고 즐기고 있다. 미국은 은밀하게 커다란 판을 짜는 듯한 인상이다. 미국 주정부들의 일본해·동해 병기 움직임이나 국제사회의 일제 위안부에 대한 비난 등 최근 우리가 거둔 외교적 성과 정도에 일희일비하기에는 국면이 간단치 않다.

한국보다 일본 중시하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1901∼1909)은 일본이 조선을 지배할 자격이 있다고 보았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를 허용했던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은 그의 재임기간 중에 체결되었다. 이후 대부분 미 선교사들은 정치와 종교 분리를 주장하면서 일제의 한반도 지배에 대해 침묵했다. 오늘날 미국 정부가 한·일의 갈등을 놓고 역사와 정치를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브리핑하면서 일본의 재무장을 용인하고 동북아를 향한 군사적 역할의 확대를 원하는 것에서 과거가 연상된다. 주한 미군의 주둔비용을 우리나라 정부가 지불하는 것 정도로 우리가 충분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보는 건 순진한 생각일 수 있다. 이해 관계가 변함에 따라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는 것이 국제정치의 실상이다.

그 옛날 예레미야는 외세에 의존하는 것이 국가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예언했다. 주의 종의 예언을 비웃고 현자를 박해했던 남유다는 멸망했지만 우리는 예언자 예레미야로부터 미래를 위한 가르침을 얻어야 한다.



남성현 한영신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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