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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만 칼럼] 한맺힌 아비와 못난 딸이 만날 때

[임순만 칼럼] 한맺힌 아비와 못난 딸이 만날 때 기사의 사진

“이산가족 상봉의 감동은 한국의 힘… 민족의 이 끓는 에너지를 길어 올려야 한다”

“내가 죽더라도 네가 누나를 꼭 찾아라.” 황해도 옹진이 고향인 60대 후반의 아들 김명복은 아버지의 유언장을 들고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열리는 금강산을 찾았다. 아버지는 1·4후퇴 때 딸을 북에 두고 남으로 내려와 한스러운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떴다. 선친이 떠난 지 10년, 부녀가 헤어진 지 64년 만에 남한의 아들은 부친의 유언장을 들고 북측의 누나 명자씨를 만났다.

1·4후퇴 때 딸을 처가에 맡기고 남으로 내려왔던 90대 손기호 할아버지가 딸 인복씨를 만났을 때 딸의 첫마디는 “못난이 딸을 찾아오셔서 고마워요”라는 것이었다. 죽더라도 자식을 만나고 죽겠다며 구급차에 몸을 실었던 90대 김성겸 할아버지는 드디어 만난 아들과 딸에게 “여기서(북한) 잘 살아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돌아가시지 말라”는 자식의 말에 그는 “사람은 다 죽어”라고 답했다. 누구나 죽는다는 평범한 이 사실. 그러나 이것이 64년 만에 자식을 만난 아버지가 다시 헤어지며 남기는 말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평생의 한을 풀었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지난 20∼22일 금강산에서 있었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 현장의 이야기들이다. 90대 3명은 이동식 침대에 누워서, 또 다른 고령의 14명은 휠체어를 타고 금강산으로 갔다. 남측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 82명과 동반가족 58명은 60여년 만에 북에 있는 가족 180여명과 만났다. 23일부터 25일까지는 북측 상봉 대상자 88명이 남측 가족 361명을 만난다.

60년이 넘는 세월을 기다렸다가 기어코 만남을 이루고 돌아오는 사람들. 그들의 눈물을 보면서 ‘산천은 의구하다’는 말에 감전(感傳)당한다. 국토는 갈렸고 체제는 막혔지만 헤어진 사람들은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노루나 토끼처럼 살아왔다. 지금 지구상에 이보다 더 뜨거운 힘은 없다. 어느 나라 사람들이 한평생에 걸쳐 저런 유언장을 남기고, 그 아들은 그 유언장을 들고 가 피붙이의 눈물을 닦아주겠는가. 한 맺힌 아비가 딸을 만났을 때, 그 딸이 ‘못난 딸을 찾아주신 아버지’를 부르짖으며 눈물을 흘릴 때 그 감동의 파워를 능가할 수 있는 힘이 이 지구상에 있겠는가.

그런 힘은 이 산하에 아직도 무진장하다. 아니, 이 산하는 그런 힘으로 만들어져 있다. 남북 이산가족 가운데 지금까지 가족의 생사를 확인한 사람은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2만9000여명 가운데 8200여명으로 6.3%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지금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전면적으로 확대되거나 계속되지 못하고 남과 북의 이런저런 사정에 의해 간헐적으로 되풀이될 뿐, 한 번 만난 가족들은 영원히 다시 만날 길을 기약하지 못하고 세상을 뜨게 된다는 것을.

군 전방부대에서 실시하는 100㎞ 행군이 한참 고비를 지날 때였다. 휴식도 없이 20시간 계속되는 행군에서 체력이 고갈된 병사들은 안간힘을 쓰며 밤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부대장이 이등병 신학생을 불렀다. “이병 복음송 일발 장전!” “네, 알겠습니다.” 이등병은 갑작스러운 명령을 받고 캄캄한 산중에서 목청을 뽑았다. “깨어나 일어나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어둠 속에 잠자던 영혼 일어나라. 일어나 걸어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악에 받쳐 부르는 이등병의 노래가 울려퍼지자 기진맥진한 병사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등병은 더욱 굳세게 노래를 불렀다. 산이 통째로 가벼워지고 있었다. 아리랑 고개는 더 이상 넘기 힘든 고개가 아니었다. 병사들은 그 밤 가볍게 100㎞ 행군을 마쳤다.

이런 계기가 있어야 한다. 남과 북의 달리다굼(마가복음 6:41)이 있어야 한다. 남과 북은 깨어나야 한다. 지금까지의 고만고만한 대립이란 것이 대체 뭘 위한 것이었는지, 다른 분단국들은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통분(痛憤)해야 마땅하다.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 산하를 형성하고 있는 분단 민족의 끓는 에너지를 어떻게 길어 올려야 서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를.

임순만 편집인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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