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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 간호사 출신 김재임씨의 도전 “꿈이 있으면 공부는 저절로”

파독 간호사 출신 김재임씨의 도전 “꿈이 있으면  공부는 저절로” 기사의 사진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요? 꿈을 갖게 하세요. 그럼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걸요.”

한국방송통신대학 농학과를 지난 19일 졸업한 김재임씨는 올해 예순아홉 살이다. 공부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라 이 학교 농학생명과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재임씨는 “침침한 눈, 쇠잔해진 기억력과 싸우다시피 하면서 공부를 하는 건 바로 꿈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꿈은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경험을 쌓아 화훼전문대학을 세우는 것.

독일연방화훼전문연합회(FDF) 한국 지사장으로 2004년부터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독일화훼자격증’(1998년)을 비롯해 화훼 분야의 장인으로 인정하는 ‘독일화훼마이스터’(2009년) 자격증까지 관련 자격을 8개나 갖고 있다. 그러나 국내 대학 학위가 없어 대학 강단에는 서지 못하고 있다.

“고교를 졸업한 뒤 전북도립병원 간호대에 입학했지만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자퇴했습니다.”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학위가 없는 이유를 담담히 털어놨다. 그는 전북 완주 보건원에서 2년간 일한 경력을 인정받아 파독 간호사가 됐다. 1970년 8월 독일에 간 그는 중부지역의 한 병원에서 근무했다. 그는 수당이 많은 야근을 자청했고, 휴일에는 파트타임으로 또 일을 했다. 그렇게 번 돈 대부분을 고향 부모에게 부쳤다. 자신을 위해 쓴 돈은 중고 피아노를 24개월 할부로 구입한 게 전부였다.

“그 피아노 덕분에 남편을 만났으니 제대로 투자한 거죠. 하하.”

기숙사 선배는 어느 날 쉬지 않고 일만 하는 그를 안타깝게 여겨 파독 광부들과 함께 가는 피크닉에 반강제로 내보냈다. 그 자리에서 만난 지금의 남편 김성일씨는 ‘피아노를 친다’는 그에게 반해 기숙사를 찾아왔던 것.

결혼한 뒤에도 병원에 나갔던 그는 가정 형편이 나아져 1980년 그만두었다. 전업주부가 된 그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딘스라켄 순복음교회 성전 꽃꽂이 자원봉사를 열심히 했다.

“기왕 하는 꽃꽂이니 제대로 해보겠다는 마음에 독일연방 상공부 관할 화훼전문학교에 입학했어요”

그때 재임씨의 나이 만 50세. 늦깎이 공부를 시작한 그는 엉덩이가 짓무를 정도로 의자에 앉아 책과 씨름했단다.

그는 “이번에도 꽃꽂이 강의를 하면서도 열심히 공부해 ‘평생학습상’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공부가 정말 재미있다는 재임씨는 “화훼전문대학을 세우게 되면 재주는 있으나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글 김혜림 선임기자, 사진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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