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이선우] 비겁한 변명 기사의 사진

지금은 공무원의 부패를 단속하고 방지하기 위한 법과 기구가 만들어져 있지만, 한때 우리 사회는 권력형 부정부패로 치부를 하는 것이 용이한 시절도 있었다. 특히 맑지 못한 윗물 개인이 축재한 액수가 무려 몇 천억 원에 이르다 보니 일반 국민들은 기회가 있을 때 일확천금을 노리지 못하면 어리석어 보이고, 가진 것이 없는 자신이 창피해지는 황금만능의 시대가 되어 버렸다. 황금만능은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단순히 물질적 추구성향만을 부추긴 것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정의에 대한 저항의식도 키워주었다.

그런데 이 저항의식이란 것이 민주화를 위한 투쟁기간에는 그래도 정의감이 살아 있어서 황금만능의 야성을 억제시킬 수 있었지만, 민주화 성취 이후에는 불평등한 사회, 응답 없는 사회정의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 그동안 가꾸어져 왔던 사회규범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났다. 공권력에 대한 저항, 기득권에 대한 거부감, 정책에 대한 불신 등이 사회를 지탱해 가는 기존질서에 대한 거부로 이어진 것이다.

이 와중에 발생한 보수와 진보의 이념논쟁은 종북 시비와 어울리면서 우파와 좌파로 양분되어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였고, 무엇이 정의이고 진실인가를 떠나 SNS를 통한 익명의 댓글 폭격으로 용기 있는 지식인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거나, 의식 있는 시민들의 입을 봉해버리는 사회를 만들었다.

어찌 보면, 국민들로 하여금 우리 사회를 냉소적으로 만드는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과 나이 든 사람들의 행태에 문제가 있기도 하다. 소위 청렴하고 능력 있는 공직자를 임용하기 위하여 만든 국회인사청문회는 국민들을 웃기는 하이코미디가 된 지 오래되었고, 우리 사회의 존경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을 없애버리고 불신과 경멸의 눈으로 쳐다보게 하는 데 대단한 일조를 하였다. 또한 어른들의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들도 젊은이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기 참 좋은 소재를 제공하였다.

사회규범의 붕괴는 존경받는 어른의 위치를 흔들어 버렸고, 존장(尊長)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던 어른들은 창피를 당하는 것이 두려워 사회의 기현상에 눈을 감아버렸다. 버스 안에서 전화통화를 시끄럽게 하는 젊은이들에게 훈계하였다가 된통 당하는 어르신을 보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을 야단쳐야 할 아저씨들은 눈을 돌리고 속으로만 궁시렁거리는, 그러나 어찌 보면 비겁하지만 보신이 가장 현명한 가치인 사회가 되어 버렸다. 어르신이 앞에 서 계셔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것은 물론 빈자리가 생기자 쏜살같이 달려가 어르신들을 제치고 앉는 학생들에게 감히 훈계를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아니, 우리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지 반성해봐야 하는 그런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비정상적일지도 모른다. 젊은 세대들의 사고는 변하였는데 기성세대들이 그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당연히 인사청문회의 역할이 고위공직자들의 청렴성을 검증하면서 굳이 후보자 개인이 모멸감을 느끼도록 하여야, 그것이 경종이 되어 우리 사회가 깨끗해질지도 모른다.

SNS를 통한 댓글 폭격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용기 있는 지성이고, 그런 댓글 폭탄을 수도 없이 날릴 수 있어야 의식 있는 시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다른 사람들과 다툴 만한 용기도 없고 누구나 인정하는 정의를 부정한 것이라고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을 보면서도 한숨만 푹푹 쉬어야 하지만, 스스로를 시민의식도, 정의감도 없는 한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왜냐하면, 스스로 위안하기를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일반 시민들의 마음이 대부분 이러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래서는 국가발전이 없는 것을….

이선우 방송통신대 행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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