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제국] 한·일 관계 이대로 둘 건가 기사의 사진

지난 토요일 3·1절 기념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 과오를 인정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며 아베 신조 총리를 직접 겨냥했다. 이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는 천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다”고 한 지난해 3·1절 발언에 이은 초강수 강경 메시지다. 이는 아베 정권의 지속적 도발에 기인한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요즘의 한·일 관계를 검토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베 총리 개인의 우익적 신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대 일본 정권의 경우 총리 개인의 독단적인 생각이 여과 없이 그대로 실행에 옮겨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외교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했다. 일본사회의 일반적인 의사결정 구조는 답답할 정도로 ‘선례’와 ‘관행’을 중요시하고, 돌출적인 행동은 극히 자제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아베 총리의 경우 이러한 의사결정 관습을 무시하고, 그의 ‘확신범적’ 역사인식이 그대로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다.

둘째, 한·일 두 나라 국민 사이의 감정대립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을 둘러싼 행보에 대해 박근혜정부와 우리 국민은 매우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고, 이를 접하는 일본 국민은 전에 없이 반발하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한국 내 각종 매체가 쏟아내는 반일적 기사들이 거의 실시간 번역돼 일본 국민들에게 속속 전해지고 있다. 이에 격분한 일본 네티즌들은 반한적 댓글을 생산해 광범위하게 유포하고 있다.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와 같은 말은 이제 꺼내기조차 어렵게 됐다. 한류(韓流)가 한류(寒流)가 된 건 양국 관계의 방증이라 하겠다.

셋째, 극도로 위축된 양국 외교 당국의 운신의 폭을 들 수 있다. 아베 총리의 개인 신념이 매우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일본도 그렇지만 박 대통령의 대일 원칙주의 고수는 외교 당국으로 하여금 숨쉴 공간을 잃게 하고 있다. 즉 외교 당국에 의한 보다 창조적인 정책 접근 시도가 그 근본부터 차단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당국의 대변인 성명은 언제나 강경 용어로 가득 차 있고, 양국 간 실무접촉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형국이다. 한·일 관계를 망치고 있는 원인 제공자가 일본이라고 해서 지금과 같은 악화일로의 양국 관계를 그대로 방치해도 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국익을 생각해도 그렇고, 양국 관계를 바라보는 관련국들의 복잡한 계산을 고려해서도 그렇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양국 국민 간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져 머지않아 경제협력은 물론이고 시민사회 교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또한 동북아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는 중국에 ‘묘한’ 심리전을 전개할 수 있는 공간을 허용하게 될 것이고, 이를 불편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미국이 우리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올지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도 이러한 불화를 은근히 즐기고 있을 것이다. 이쯤해서 양국 당국 간 대화를 활성화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입장을 일본 국민들에게 직접 소개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이 일본 매스컴과의 회견에 직접 응해 우리 입장을 솔직하고 진정성 있게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우리가 당당한데 직접 소통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일본군 위안부와 동해표기 문제 등에 있어 국제적 지지 분위기를 이끌어내려는 우리의 전략이 유효한 것이라 하더라도 지구촌 일각에서 최근 형성되고 있는 ‘악발이 한국’이라는 이미지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세련되고 지혜로운 한국’의 모습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외교가 오직 자국민 감정만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흐르면 암담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제는 좀 더 ‘쿨’하고 ‘창조적’인 대일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장제국 동서대 총장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