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칼럼] 문화산업의 경제학 기사의 사진

“문화융성이 창조경제의 씨앗이 될 수 있도록 새로운 문화생태계를 조성해야”

2002년 KBS는 ‘겨울연가’를 첫 방송했다. 총 20부작이니 편당 1억5000만원씩 대략 30억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비용은 KBS와 외주제작사가 분담했다. 그런데 NHK가 200억원에 아시아 방송권 등을 사들였다. 그후 NHK는 2010억원의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투자금의 10배 넘게 벌어들인 셈이다. 게다가 2003년 겨울연가는 ‘욘사마 신드롬’까지 일으켰다. 정작 KBS는 34억원을 버는데 그쳤다. 제작비를 아끼려고 KBS가 아시아 방송권 등을 외주사에 넘겼고 외주사가 NHK에 되팔아 넘긴 결과였다. 이 사례는 작가와 PD의 창의성, 최고의 문화 콘텐츠, 지적재산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문화산업은 창의와 콘텐츠, 지적재산권 3박자가 맞아야 경제적 가치를 만든다. 문화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 소비를 연결하는 가치사슬이 하드웨어와 네트워크, 유통 및 서비스산업 전반에 유무형의 막대한 파급효과는 물론 연관산업의 동반된 발전을 이끌어간다. 그런 점에서 문화산업은 창조경제의 주요 부분을 차지한다. 문화융성이 곧 창조경제의 씨앗이다. 세계 각국이 문화산업을 국가경제의 성장엔진으로 발전시키려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다. 메릴린치 수석분석가 해럴드 보겔도 저서 ‘엔터테인먼트산업의 경제학’에서 문화산업이 향후 국가경제에서 기능하고, 연관을 갖는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도 문화산업의 경제적 가치에 눈뜨고 있다. 하지만 우리 문화산업이 지속 성장할 문화 생태계가 있는지에 의문이 든다. 한류도 꺼져가는 것 아니냐는 진단도 나온다. 일본에서 이미 한류는 식었다. 중국도 2년 내 한류를 중류(中流)로 만들겠다고 바짝 따라붙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영국의 문화정책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10년 전 영국은 우리와 엇비슷했다. 여전히 방송사 독과점에다 불공정 거래 등이 고질적 병폐였다. 독립제작사들의 창의적 작품들이 묵살되었다. 그러자 문화의 경제적 가치를 간파한 영국 정부가 1990년대 말 범정부 차원의 위원회를 구성하고 문화시장 실태 조사까지 벌였다. 그리고 2003년 ‘커뮤니케이션법’이 나왔다. 방송사 등 문화 주체들간 갑을관계가 없도록 ‘거래규정’까지 만들었다. 개인들의 지적재산권과 이익분배제도 도입되었다. 바우처 등 갖가지 정책들이 나왔다. 이후 영국은 창의성이 넘치는 문화강국으로 변모했다. 인재를 양성하고 창의를 존중하고 수평적 관계를 기반으로 한 상생 전략도 성공했다. 비정상적 관행들이 정상화됐다. ‘해리포터’도 이런 토양에서 나왔다.

정부가 문화융성 방안을 내놓고 있다. 영국을 벤치마킹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런데 이벤트만 있을 뿐 새로운 문화 생태계를 위한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문화 경쟁력은 민간의 창의력에서 출발한다. 글로벌 가수 싸이나 한류의 상징 ‘소녀시대’가 어디 관이 주도한 문화적 결과물인가.

공정거래위원회는 불공정 거래를 호소하는 독립제작사들을 외면하고 있다. 정부의 문화지원 체계도 왜곡되어 있다. 여기저기 ‘지원금 따먹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지상파엔 정부 지원금을 겨냥한 프로젝트 전담팀까지 가동되고 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영국이 표방한 ‘팔길이 원칙’도 무색하다. 그 사이 자본력을 앞세운 ‘문화재벌’들이 독과점을 굳혀가고 있다. 대형 연예기획사들이다. 이들은 가요계는 물론 드라마, 방송사까지 좌지우지할 만큼 덩치를 키웠다. 벌써 한류의 획일화를 우려한다. 반면 창의적 작가나 연기자, 제작자들이 설 땅이 없어진다.

문화산업은 지속 성장을 해가야 한다. 그러려면 문화시장의 비정상도 정상화돼야 한다. 창의를 존중하고 최고의 문화 콘텐츠를 만들고, 이것이 경제적 가치로 재생산되는 선순환의 문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지난 10년간 영국이 ‘돈이 되는’ 문화산업의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어왔는지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김경호 논설위원 kyung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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