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의 샘] 문명의 꽃은 쇠몽둥이로 피울 수 없다 기사의 사진

봄의 첫날이 붉게 물들었다. 안타깝게도 꽃 소식이 아니다. 중국 윈난성 쿤밍 철도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피의 참사 때문이다. 서른 명 가까이 죽었다. 백 명을 훨씬 웃도는 사람이 크게 다쳤다. 현장에선 용의자의 가슴 부근에 단 성월(星月) 표식이 포착되었다. 중국 당국은 사건을 위구르 독립운동 세력의 한 분파인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이 일으킨 계획적 테러로 규정하고 있다. 사람들은 양회(兩會)에서 이 사건이 베이징의 황사 문제와 함께 가장 뜨거운 화두가 될 것이라 예견했었다.

쿤밍은 슬픔과 충격에 휩싸였다. 어이없이 참사를 당한 사람들과 가족들에게는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무작정 검은 괴한들을 욕하고 말 일도 아니고, 사살하거나 중형을 내리는 걸로 해결될 일도 아닌 듯하다. 세계의 패권국을 넘보는 중국에 있어 소수민족의 테러 문제는 앞으로 가장 어려운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공식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이다.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 중화(中華)라는 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中)은 ‘세계의 중심’, 화(華)는 ‘문명의 꽃’이란 의미다. 고대 동아시아 사람들은 중원 대륙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고, 그곳을 차지하는 자가 세계의 주인이 되었다. 하, 은, 주는 그 가운데 대표적인 나라일 뿐 순임금은 동이족 사람이었고, 문왕은 서이족 사람이었다는 맹자의 말대로 혈통은 서로 달랐다. 온갖 종족이 중원에 섞여 싸웠고, 승리한 종족이 세계의 주인이 되어 새로운 문화의 꽃을 피웠다.

중원이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각 나라의 언어와 문자를 말살하고 독자적 관습과 문화를 파괴하여 획일화한 진나라부터다. 서동문거동궤(書同文車同軌)로 일컬어지는 대대적인 이 통일 정책은 진시황의 가장 야만적인 폭정이자 동시에 오늘날 중국을 탄생시킨 웅업이기도 한 이중적 얼굴을 하고 있다.

긴 쟁패의 역사에서 중국은 ‘중(中)’이란 사상을 만들었다. 중은 세계의 중심 가치이자 표준이다. 모든 정치와 제도의 규율이었고, 야만과 문명을 가르는 잣대였으며, 도덕과 윤리의 벼리였다. 중을 잡은 자가 천자가 되어 우주의 중심이 되고, 중의 범위 안으로 들어온 나라만이 문명국의 지위를 누리게 되며, 중의 윤리를 실천하는 자가 성인으로 추앙받았다.

중은 지극히 선한 가치를 표방하며 우주론에서 심성론에 이르기까지 심오하고 일관된 철학을 세웠다. ‘중용’은 그 결과물이다. 하지만 중은 매우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며 또 독선적이다. 중의 범위에 들어오지 않은 모든 것은 야만이며, 그것은 악으로 규정되어 배척되었다. 주변 민족에 대한 폭력은 문명화라는 미명 아래 당당하게 자행되었다. 순임금이 개척한 문명사의 첫 페이지가 공공, 환도, 삼묘라는 종족을 몰아내고 말살한 일이었다는 것에서 그러한 예를 잘 볼 수 있다.

중(中)에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속성만 있다면 이 사상은 진작 생명을 다했을 것이다. 중은 관념적 이상으로의 역할만 하였고, 현실 적용 논리는 꼭 그렇지 않았다. 현실 논리란 다름 아닌 화(和)이다. 화는 관용의 정신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조화의 세계관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나라로든 사상으로든 중은 자신의 외연을 확장해 왔다. 이것이 중국의 저력이고, 중화(中華)의 본 모습이다.

근대에 와서야 중국은 처음으로 ‘중화’라는 두 글자를 나라 이름 맨 앞머리에 올렸다. 중화의 정신으로 새 시대의 꽃을 피워내겠다는 의지이리라. 그렇다면 중국은 그 국호에서 천명했듯 자신들의 나라가 한족(漢族)만의 나라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중국의 역사가 결코 한족의 역사가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한다. 중화는 몽고와 만주, 거란과 여진은 물론이고 무수한 소수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중의 용광로에 용해되어 피워올린 꽃임을 알아야 한다.

신장위구르의 분리독립 요구는 근래 들어 방법이 한층 격렬해졌다.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고, 무차별 테러에서 항공기 납치에 이르기까지 방법은 잔인하고 대담해졌다. 무엇보다 이번 테러는 신장위구르를 벗어난 지역에서 벌어진 첫 사례란 점에서 더욱 주목을 요한다. 문제는 신장위구르만이 아니다. 티베트 또한 비폭력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오랜 세월 분리독립운동을 벌여 왔다.

혈통과 종교, 역사와 언어의 이질성을 더 이상 진시황과 같은 방법으로 봉합할 수는 없는 시대다. 더구나 차별과 배제, 경제적 불평등과 종교 탄압 같은 굵직한 모순들이 다층적으로 중첩되어 있다. 여기에 테러 진압을 빙자한 중국 당국의 강경한 대응이 문제를 키웠다. 쇠몽둥이 진압은 잔인한 테러가 되어 돌아왔다. 말하자면 쿤밍역에서 벌어진 참사는 중국 정부가 던진 폭력과 야만의 부메랑인 것이다.

중국이라는 용광로는 예로부터 중원의 주인을 차지한 나라와 민족을 녹이는 데에는 탁월한 힘을 발휘했지만, 소수민족을 포용하고 녹이는 데에는 그다지 신통하지 못했다. 시대의 변화에 맞는 진화한 용광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쿤밍 사태는 중국이 새로운 시대의 세계 리더로서 자격을 갖추었는지를 가늠할 시험대가 될 것이다. 야만의 쇠몽둥이로는 결코 문명의 꽃을 피우지 못한다. 중국이 깊이 새겨야 할 점이다.

이규필(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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