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친일파 후손의 집요한 소송] 320억 친일 땅 환수 날린 특별법 한 줄 기사의 사진
특별법 개정 반발 헌소까지 냈지만… 친일 땅 국가귀속

■ 이우영씨, 정부와 법정 다툼 5건

이우영(74)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은 7년째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 회장은 조선 왕족 친일파 이해승의 손자다. 그는 할아버지가 일제로부터 받은 땅 205필지 377만여㎡를 상속받았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이하 재산조사위)가 2007년 친일재산을 국가에 반납하라는 결정을 내리자 이 회장은 2008년부터 소송을 시작했다.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들을 고용해 그가 진행한 소송은 모두 5건이었다. 이 회장은 정부를 상대로 낸 첫 소송에서 2010년 최종 승소해 320억원 상당의 땅을 지켜냈다. 이씨가 물려받은 땅의 절반이 넘는 규모였다.

이해승의 친일행각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친일재산 국가 환수는 불가능하다는 대법원 판단에 공분이 일었다. 국회는 대법원 판단의 근거가 됐던 ‘일제강점 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 일부를 개정했다. 이후 이 회장은 나머지 소송에서 내리 패소했다. 이 회장은 현재 패소한 소송에 불복, 상급법원에 상소한 상태다. 그는 친일파 할아버지가 100여년 전 소유했던 땅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물려받은 토지는 친일재산이 아니다”= 이 회장은 ‘할아버지가 물려준 땅은 친일행각으로 얻은 게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재산조사위는 2007년 11월 경기도 포천시 자작동 임야 118만㎡를 비롯해 포천시, 경기도 평택시, 충북, 서울 은평구 땅 192만여㎡를 친일재산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시가로 320억원에 달하는 땅이었다. 재산조사위는 2009년 포천시 설운동 임야와 서울 은평구 토지 등 13필지(185만여㎡, 시가 228억원 상당)에 대해서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재산조사위는 이어 ‘205필지의 땅은 이해승이 1910∼32년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얻은 땅이므로 국가에 귀속돼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 회장은 2008년 즉각 소송을 제기했다. 이해승은 1910년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았다. 이 사실은 이 회장도 인정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법정에서 “이해승은 대한제국 황실의 종친이라는 이유로 후작 작위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제는 한국 식민 지배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조선왕실 종친들을 회유하고 포섭했다. 철종의 생부 전계대원군의 5대 사손(嗣孫)이었던 이해승도 포섭 대상이었으며, 이해승은 작위를 거부하지 못했을 뿐 친일 행위를 하지는 않았다’는 논리였다. 또한 이해승이 받은 땅은 일제에 협력한 대가가 아니라 선대로부터 상속받은 전계대원군 등의 묘역 관리를 위한 사패지(賜牌地·조선시대 임금이 내려준 논밭)라고 주장했다.

◇법안 문구 하나로 엇갈린 소송의 승패= 이 회장은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위헌법률 심판을 비롯해 자신이 제기한 5건의 소송에서 이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1건에서 이겼고, 나머지 4건에서는 졌다. 승패를 가른 것은 특별법의 문구 하나였다. 2005년 제정된 특별법은 2011년 5월 개정되기 전까지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를 친일반민족 행위로 규정했다.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 조항은 결과적으로 이 회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해승이 ‘한일합병의 공으로’ 후작 작위를 받았다는 증거는 없으니 친일행위로 봐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가능해졌다. 이 회장이 제기한 첫 번째 소송의 항소심 법원과 대법원은 이 논리를 받아들였다. 법 개정과 헌법재판으로 이어지는 긴 공방의 시작이었다.

서울고법 행정9부는 2010년 이 회장이 “국가귀속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재산조사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을 깨고 이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법을 엄격하게 해석했다. 작위를 받기 전 이해승이 한일합병에 가담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재판부는 “이해승이 일제의 한일합병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고, 한일합병 이후에는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일제의 식민 통치에 협력했다는 데 대한 역사적·도덕적 비난은 별개의 문제”라고 밝혔다. 판결은 5개월 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 회장은 320억원 상당의 땅 192필지를 돌려받았다.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같은 취지의 다른 하급심 소송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왔다.

◇“친일 공적 없는 자에 일제가 작위를 줄 리 없다”= 대법원 판결은 국회에서 논란이 됐다. 이해승의 한일합병 이후 친일 행각이 인정되는데도 후손이 상속받은 친일 재산을 환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6일 “미흡한 법 때문에 친일 재산 환수에 실패한 경우”라고 말했다.

이 회장이 진행 중인 다른 소송의 결과도 이 회장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별법의 문구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국회는 2011년 5월 새누리당 김을동 의원의 대표발의로 서둘러 특별법을 개정했다. ‘한일합병의 공으로’라는 문구가 삭제됐다. 한일합병 가담 여부와 상관없이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계승한 자’라면 모두 친일 재산 국가귀속 대상이 됐다. 국회는 “‘한일합병의 공’이라는 범위가 분명하지 않고 추상적인 문구이며, 친일 공적이 없는 사람에게 일제가 작위를 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미 확정된 소송은 어쩔 수 없더라도 나머지 소송을 의식한 법 개정이었다.

이 회장은 반발했다. 개정된 특별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받겠다고 나섰다. 그는 2011년 12월 진행 중이던 관련 소송 담당 재판부에 위헌법률 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이 회장은 “친일행위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기만 해도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된다”며 개정 특별법의 처분이 과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특정인을 겨냥한 법 개정이기 때문에 평등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 회장의 주장을 받아들여 헌재에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정부, 헌재 결정 이후 반격 시도= 헌재는 특별법 개정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계승한 자’는 일제의 반민족적 정책의 결정과 집행에 깊이 관여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봤다. 또 일제의 귀족이 됐다는 의미를 짚었다. 헌재는 “일제의 귀족은 일제 강점기 초기에 형성된 친일 세력의 최정점에 위치한 상징적 존재”라고 평가했다. 지위 자체만으로 친일 세력의 형성과 확대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일제 강점 체제의 유지·강화에 협력해 조선사회에 심대한 영향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일제의 작위를 반납하거나 거부한 사람들은 예외로 인정하는 조항이 있다는 점도 참작됐다.

지난해 7월 헌재의 합헌 결정을 이끌어낸 정부는 반격을 시작했다. 지난 1~2월 이 회장이 관련된 모든 소송에서 승소하고 있다. 정부는 국가 귀속 절차까지 마친 경기도 포천시 설운동 땅 4만여㎡에 대해 이 회장이 제기한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 항소심 소송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승소했다. 이해승을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지정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재판과 서울 은평구 토지 12필지에 대한 소송에서도 정부가 이겼다. 오히려 정부는 이 회장을 상대로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팔아 번 돈 228억원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해 지난 2월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재판부는 “개정 특별법에 따라 이해승은 친일반민족 행위자에 해당한다”며 “해당 토지도 일제의 식민지 토지정비 정책에 편승해 받은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 회장 측은 소송에 불복, 패소한 모든 사건을 상급법원에 상소했다. 7년간의 소송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것이다. 국민일보는 이 회장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접촉했지만 해외출장 관계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사건을 맡고 있는 이 회장의 변호인은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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