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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김준섭] 일본식 경쟁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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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철저하게 힘(실력)에 의한 위계질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압도적인 힘을 가진 존재를 숭상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가치관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이 스모(일본씨름)다.

모두 6부 리그로 구성되어 있는 오오즈모(프로 스모)의 경우 리그별로 모든 스모 선수들에게 계급이 부여되어 있으며, 이 위계질서의 최상위에 요코즈나가 있다. 요코즈나는 영어로 그랜드 챔피언(grand champion)이라고 번역되지만, 다른 종목의 챔피언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요코즈나의 의무는 항상 우승을 하거나 우승에 준하는 성적을 거둘 정도의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이 기준을 달성하지 못하면 호된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다. 따라서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은퇴를 할 수밖에 없다. 다른 모든 종목의 챔피언이 타이틀을 잃었다가도 챔피언으로 부활할 수 있는 것에 반해 요코즈나는 그와 같은 일이 불가능하다. 요코즈나는 일본을 상징하는 존재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이 요코즈나가 아래 계급으로 강등되어 다른 선수들과 진흙탕싸움을 하는 것을 보는 걸 원하지 않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오오즈모는 매년 여섯 번의 대회를 하는데, 요코즈나는 당연히 이들 대회에서 항상 우승 경쟁을 하게 되며 실제로 우승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강력한 요코즈나의 경우 여섯 번의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일본인들은 어슷비슷한 상대끼리 치열한 다툼을 하는 게 아니라 압도적으로 강한 존재가 있고 그 존재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도전해가는 형태의 경쟁을 선호한다. 엄청나게 강한 상대에게 온몸으로 부딪쳐가는 도전자의 장렬함, 항상 그와 같은 도전자들을 물리치는 요코즈나의 압도적인 힘, 이것이 일본식 경쟁의 미학인 것이다.

일본인들이 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일본의 모든 분야에는 요코즈나와 같은 존재가 있다. 예를 들어 프로야구에 있어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라는 팀이 요코즈나에 해당한다. 따라서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항상 우승전선에서 활약해야 하는 부담을 가지고 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우승을 하거나 치열하게 우승 경쟁을 해야 프로야구의 흥행 성적이 전체적으로 좋아지므로 만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다른 팀들이 걱정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도 벌어진다.

이와 같은 일본식 경쟁의 미학을 한·일 관계에 적용시켜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일본에 비해 압도적인 힘을 발휘할 경우 한·일 관계가 좋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일본인들은 압도적인 힘을 가진 존재를 시기, 질투하기보다 존경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는 이와 같은 경우를 종종 보아 왔다. 예를 들어 유학 시절 구입한 세계인명사전에는 인물의 유명도에 따라 각기 다른 분량의 지면을 할애해 소개하고 있는데, 매우 소수의 가장 유명한 인물들만이 차지할 수 있는 지면의 크기로 소개된 유일한 한국인이 일본을 패배시킨 이순신 장군이었다.

가장 최근의 사례를 소개하자면 소치올림픽에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안겨준 이상화 선수다. 일본의 경우 ‘네트우익’이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우익적이고 반한적인 댓글을 다는 사람이 많은데, 이상화 선수의 금메달에 관한 기사에 대해 달린 댓글들은 이례적으로 대부분 칭찬 일색이었다. 이 같은 현상 역시 일본식 경쟁의 미학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일 관계는 현재 매우 악화된 상태이고, 그 근본 원인이 일본의 보수 정치인들의 잘못된 역사인식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여러 번 본란에서도 언급했다. 그렇지만 일본식 경쟁의 미학에 비추어 본다면 장기적으로 한·일 관계를 좋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리가 많은 분야에서 일본을 압도할 실력을 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준섭(국방대 교수·안보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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