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문진영]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타살 기사의 사진

얼마 전 ‘세 모녀 자살 사건’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를 되새기게 된다. 2012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은 1년에 1만5000명을 넘어서서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 전 세계에서도 1∼2위를 다툴 정도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자살률의 가파른 증가 경향이다. 2000년에서 2010년까지 대부분의 OECD 회원국은 자살률이 소폭이나마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만 유독 두 배 넘게(101%) 증가해 마치 ‘자살을 권하는 사회’처럼 돼 버렸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자살 사태에 대한 현 정부의 인식은 안일하다 못해 오히려 ‘희생자 나무라기(Blaming the Victim)’에 가깝다. 정부에서는 세 모녀가 복지급여를 신청만 했더라면 이런저런 혜택을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마치 정부에서는 저소득층을 위해 복지급여를 다 준비해 놓고 있는데 신청을 하지 않은 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세 모녀가 야속하다는 식으로 들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나라에서 세 모녀가 받을 수 있는 복지급여가 떠오르지 않는다. 우선 퇴근길에 넘어졌다고 해서 산재보험의 휴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산재보험에서 통근재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고용보험의 구직급여를 받을 수도 없다. 구직급여는 구직의 의사와 능력이 있어야 지급되는데, 퇴근길의 상해로 구직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신청하면 되지 않을까? 그래도 수급자로 선정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우선 당장에 소득이 거의 없다 하더라도 세 모녀가 근로가능계층에 속하기 때문에 1인당 약 60만원의 추정소득이 부과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말 최후에는 긴급복지 지원을 받을 수 없는가? 안타깝게도 긴급복지 지원제도는 주 소득자의 사망이나 가출 혹은 화재 등으로 완전히 소득활동 능력을 상실한 가구에 지급되는 것이지 다쳐서 일을 쉬고 있는 사람에게 지급되지 않는다.

그러면 선거철이면 온갖 수식어로 치장된 복지국가를 약속했던 정치인과 정당, 그리고 한 해 예산의 30% 이상을 사회복지에 쓰는 정부는 무슨 면목으로 국민들을 대할 것인가? 비유가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보험 가입을 권유할 때는 온갖 혜택을 다 줄 것처럼 약속하다가 막상 사고를 당하면 깨알처럼 적힌 약관을 들어서 보상을 거부하는 영리 보험회사처럼 현 정부도 국민들이 막상 도움을 신청하면 온갖 복잡한 규정을 들어 거부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특히 복지급여를 신청한 국민들을 잠재적 부정 수급자로 보아 주눅 들게 하지는 않았는지 냉철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첫 번째 추진 과제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선이 되어야 한다.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가혹한 부양의무자 기준과 불합리한 재산의 소득환산제도, 그리고 부당한 소득 추정 방식 등으로 인해 250만명 이상의 빈곤층이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부정 수급자 색출과 근절’이 아니라 빈곤층 사각지대에 대한 대책이 최우선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제도·기술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정부는 삶의 벼랑 끝에서 자살이라는 극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세 모녀가 정부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생활이 어렵고 미래에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 정부는 우리의 삶을 의탁해서 몸과 마음의 안식을 얻고, 새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존재인가? 아니면 항상 화나고 무서운 얼굴로 추상같은 법질서를 강조하고, 국민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희생해서라도 경제 성장에 매진해야 한다고 채찍질을 하는 존재인가? 이제는 현 정부가 답해야 할 차례다.

문진영 서강대 사회복지학 교수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