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지현]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기사의 사진

“삶이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 아버지, 살려 주세요’라고 기도 노트에 빼곡히 적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교회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어요. 하나님께서 지쳐 있는 엘리아에게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제공하신 것처럼 생활고와 사역에 지친 저에게 새로운 힘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몇 해 전, 작은 교회 목회자 사모를 후원하는 한 기관을 취재하면서 만난 사모의 목소리다. 또다른 사모는 매월 한 권의 도서를 지원받는데 누군가 자신을 기억해준다는 사실이 무척 감사하다고 말했다. “월세와 아이들 학비도 내기 어려워 나를 위해 책을 사볼 생각조차 못했어요. 매월 내 이름이 적힌 택배를 받을 때마다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환경은 변하지 않았지만 내 얼굴이 변했어요. 이렇게 웃고 있잖아요.”

작은 보살핌이 생명의 동아줄이 되기도 한다. 가난보다 참기 힘든 것은 외로움과 고독이라고 한다. 가난보다 관계의 단절을 더 두려워한다. 누군가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 받고 힘을 낼 수 있다. 쌀이 떨어져도 쌀이 없다고 말 못하고, 혼자 가슴앓이를 하며 자녀를 양육하는 사람들을 찾아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손길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작은 보살핌이 생명의 동아줄

‘세 모녀 사건’은 지역 교회들에 어떻게 하면 지역사회를 좀더 꼼꼼하게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만들어주었다. 지자체와 교회 돌봄 사역의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교회는 지역 주민센터로부터 정보를 수집해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웃을 찾아가야 한다. 구역모임, 셀 모임을 활용해 봉사할 수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까지는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차상위계층 선정 조건을 아주 조금 넘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돈을 적게 벌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어도 여건이 안 되는 이들은 결국 추운 겨울 벼랑 끝으로 몰린다. 특히 조손·편부모 가정 아이들의 희망이 돼주어야 한다.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고아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어주어야 한다.

또 교회 행정을 꼼꼼히 챙겨볼 필요가 있다. 타 부서와 중복되거나 습관적으로 매년 행해지는 행사가 없는지. 교세에 비해 예산과 섬김이 다소 적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너도 이같이 하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듯 교회가 원하는 방법과 예산이 아니라 주님과 우리의 이웃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섬기며 봉사해야 한다. ‘내 이웃이 누구이니이까’(눅 10:29∼37)에 대한 질문을 자신에게 계속 던져야 하는 것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영성이다.

내가 고통당할 때 주님은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딱 한 곳 나온다. 예수님의 부활을 끝까지 믿지 못했던 도마가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란 고백을 하는 장면이다(요 20:28). 예수님은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고 하셨다. 도마에게 믿음의 고백을 나오게 한 것은 ‘주님의 흉터’였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고통을 감당케 하셨다. 하나님도 고통에서 면제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처럼 되셔서 인간의 조건을 공유하셨다. 하나님은 고통 받는 이웃과 함께하신다. 고통 있는 곳에 메시아가 있다. 결국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아파하고 슬퍼한다는 뜻이다.

이지현 종교기획부장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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