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남성현] 두 명의 안중근과 아시아평화 기사의 사진

올 1월 19일 중국이 하얼빈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개관한 것을 놓고 한·중·일 정부는 대립각을 세웠다. 일본 관방장관은 ‘안중근은 일본 초대 총리를 살해, 사형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고 하면서 한·중 연대를 비판했다. 작년 가을 일본정부가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살인자’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물론 중국정부도 나서서 ‘안중근은 역사적으로 저명한 항일 의사(義士)’라고 하면서 ‘안중근이 테러리스트라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14명의 A급 전범들은 또 무엇이냐’고 일침을 가했다. 의사 안중근과 테러리스트 안중근의 존재는 역사해석을 둘러싼 한·중·일 대립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가치를 기준으로 사실 정립돼야

사실은 입장이 아니라 가치를 기준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중세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독교적 가치를 기반으로 해서 사실을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굶어 죽어가는 자가 부자의 빵을 훔쳐 먹었다면 절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아퀴나스의 논리를 들어보자(양명수, ‘성명에서 사랑으로’, 2012, 268쪽). 우주 전체가 하나님의 것이다. 이는 영원법(eternal law)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이 자연을 공유하여 자연이 인간을 위해 봉사하도록 하셨다. 자연법(natural law)이다. 그런데 인간은 싸움을 피하기 위해 합의를 통해서 사유재산제를 만들었다. 사유재산제는 인간이 만든 인정법(人定法, human law)이다.

그런데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부자가 먹고 남은 것을 훔쳐 먹는다면?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 데도 부자의 잉여재산이 분배되지 않는 것은 자연법과 영원법을 어긴 것이다. 공유, 즉 자연 사물이 전체 인간의 생명에 봉사해야 한다는 자연법을 어겼고 하나님의 영원법에도 위배된다. 하지만 굶주린 자는 부자의 잉여물을 취해서 먹고 몸을 가리는 것만 할 수 있지 그걸 팔아 재산을 축적할 수는 없다. 사용권만 있지 처분권은 없는 것이다.

동일한 논리를 이토 히로부미 사살에도 적용할 수 있다. 모든 생명은 영원법에 따라 하나님의 것이다. 자연법에 따라 생명은 각각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타인의 생명을 해하는 자는 인정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그런데 미친 사람이 칼을 들고 수많은 생명을 해한다면 그 미친 자를 죽이는 것은 살인죄인가 아닌가? 그를 중지시킬 별다른 대안이 없다면 자연법과 영원법을 어긴 그를 죽이는 건 살인죄가 아니다. 따라서 한반도와 대륙침략을 기획하고 주도하여 수많은 생명을 해친 이토를 죽이는 건 살인죄가 아니다. 아마도 토마스 아퀴나스라면 이런 답을 내렸을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 하는 국적과 입장을 떼버리고 생각해야 한다. 일본 선교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일본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침략적 본성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이 기독교적 가치 위에서 생각하게 되는 날이 와야 동북아의 갈등이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돌을 들어 일본 우익을 향해 던지기 전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우리에게도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이란 죄과가 남아 있다.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남의 전쟁에 뛰어들어 우리의 젊은이들이 죽었고 베트남의 양민들을 학살했다. 한국군은 약 80여 마을에서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고 공식 희생자만 9000명에 달한다. 오늘날 베트남인들은 ‘한국군 증오비’를 세워 ‘설명 없이 집단학살’을 저질렀던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를 대물림하고 있다. 100년 전 일로 우리가 일본의 진심어린 뉘우침을 기대한다면, 50년 전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도 회개해야 한다.

우리의 시민권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다. 인정법과 외교와 국익 이전에 하늘나라의 시민으로 하나님의 법을 섬길 줄 아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

남성현 한영신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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