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문제는 소득 불평등인데 기사의 사진

“기업들 투자부진은 만성적 수요부족 탓… 규제완화보다 소득 재분배 더 절실”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완화에 정권의 사활을 건 모양새다. 일부 학자들은 필요성을 입증 못하는 규제는 모두 없애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모든 규제는 역사적 배경, 공적인 명분 등을 갖고 태어난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고위 공무원들이 몇 달씩 밤 새워서 만든 법률에 나름대로의 옹호논리가 없겠는가. 물론 불필요하거나 암적인 규제들이 아직 많이 있을 것이다. 이익집단의 기득권을 위해 법률 대신 깨알 같은 시행령에 심어 놓은 본심, 즉 핵심 내용이나 예외조항들 말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박 대통령의 지적은 이런 면에서 정곡을 찌른 것이다.

그렇지만 악마를 찾아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규제로 인한 득실을 균형 잡힌 분석으로 가려내는 견제세력의 의지와 능력이 필요하다. 역대정부의 칼날 앞에 살아남은 규제 가운데 방어논리를 허물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초점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규제들에 맞춰져야 한다. 산업진흥, 조세감면, 에너지, 금융, 의료, 교육 분야의 규제에 그런 대목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대기업, 대학교, 병원, 고액 연봉 근로자 등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정부 안에서 이익집단의 파수꾼이 된 조직들의 축소, 통폐합이 선행돼야 규제의 완화와 합리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 정부조직 개편은 이미 끝났다.

더 근본적인 의문으로 규제들을 철폐하면 투자가 과연 획기적으로 늘어날까. 지금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 근본적 원인은 나라 안팎의 만성적 수요부진이다. 그렇지만 기업들은 수요부진을 타개할 임금인상을 언급하는 대신 자신들의 입맛에 쓴 규제의 완화를 늘 요구한다. 정부가 규제의 양면적 성격을 망각하고, 이를 함부로 없애거나 완화하면 오히려 정책실패의 위기를 맞게 된다. 대학진학률을 세계최고로 끌어올린 1995년의 5·30 대학설립 자율화, 외환위기의 도화선이 된 외환금융 자율화, 카드 대란을 불러온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자율화, 중대 산업재해와 화학물질 유출사고를 늘린 환경 및 산업안전 관련 규제 완화 등이 그것이다.

지금 더 절실한 것은 소득재분배다. 가난한 사람의 소득증가분 10만원은 당장 소비되지만, 부자가 추가로 번 돈은 좀처럼 쓰지 않는다. 한국은행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총저축 중 기업저축 비중이 2000년 32.2%에서 2007년 42.7%, 2011년 48.6%로 높아졌다. 반면 노동소득분배율은 2007년 61.1%에서 2011년 59.5%로 감소했다. 한은은 이에 따른 소비부진이 경제의 선순환을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물가상승분을 제외한 가계 소비지출은 0.4% 감소했다.

유효수요를 늘리기 위해 기업 매출액에서 임금과 배당의 몫을 증대시켜야 한다. 지금 강대국들은 앞다투어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있으며, 일본은 기업들의 임금인상까지 독려하고 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대공황기에 부당노동행위 처벌 등 노동조합 활동을 보호하는 일련의 입법을 통해 소득재분배를 꾀했다. 최근 다보스 포럼과 국제통화기금(IMF)도 소득불평등이 세계의 경제성장에 위협요인이 된다고 경고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소득 불평등은 결혼과 출산 기피, 경제활동인구의 감소, 최악의 노인 빈곤율과 높은 자살률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경제성장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경제와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 소득 불균형 해소는 중장기적으로 공정거래 질서 확립, 일터에서의 차별시정, 노동 분배율 제고와 같은 경제민주화, 혹은 규제의 완화와 강화를 포함한 규제 합리화를 통해 추진될 수 있다. 더 큰 그림으로는 생산보다 소비와 분배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는 재정정책을 구상해봄 직하다. 즉 농촌정책의 일환으로 ‘그곳에 살기만 해도 주는’ 주민보조금 성격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다. 재원은 각종 농어업 보조금과 정책자금을 통폐합해 마련하면 된다. 소비 증대, 도시 빈민과 청년의 귀촌을 통한 지역 균형발전, 농촌의 부활을 기대할 수 있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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