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김계동] 국민합의 없는 통일은 실패 기사의 사진

‘주권재민(主權在民)’이라는 말의 의미는 국가의 주권을 국민들이 소유하고, 따라서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이는 국가가 소멸되거나, 새로운 국가가 설립되거나, 이웃 국가를 합병할 때 국민들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통일은 국가의 변동을 전제로 한다. 합의통일은 지금의 국가를 없애고 새로운 국가를 탄생시키는 것이고, 흡수통일은 지금의 국가가 확대되어 북한까지 주권이 확장되는 것이다. 통일은 국가가 변동되는 것이기 때문이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의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과연 통일을 반대하는 국민들이 있을까? 통일이 아직 멀고 통일의 가능성이 희박할 때 국민들은 통일에 대하여 별로 반대를 하지 않지만 실제로 통일이 다가오면 통일 이후 자신의 삶의 변화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통일 이후 자신의 삶이 이전보다 어려워지리라 생각하면 통일을 반대할 수도 있다.

국가의 주권 변화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이 유럽통합 과정에서 나타났던 사례가 있다. 1952년 석탄철강공동체(ECSC)로 시작해 경제공동체(EEC), 유럽공동체(EC)를 거치면서 발전한 유럽통합은 1992년 12개 국가들이 유럽연합(EU)을 형성하는 마스트리트 조약을 체결했다. 정치, 안보 분야 등 국가 주권에 해당되는 분야의 통합이 포함되기 때문에 참여국들은 이 조약에 대한 국민들의 비준을 받아야 했다.

당시까지 유럽통합을 주도하던 각국의 지도층과 엘리트들은 유럽통합이 유럽에 이득을 안겨줄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없이 비준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비준은 매우 어렵게 이루어졌고, 심지어 덴마크의 국민투표에서는 49대 51로 부결됐다. 덴마크 국민들은 실질적인 국가통합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통합 이후 자신들의 삶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의 우려는 작지만 부유한 낙농업 국가인 덴마크가 통합 이후 EC 내의 빈곤국들에 부를 빼앗길 우려가 있고,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생존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이 결과를 보고 유럽통합을 추진하던 지도층과 엘리트들은 크게 반성하게 되었다. 통합은 상층부에서 봤을 때 국가에 이익이 되는 것이지만 국민들은 반드시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국민들의 의견을 너무 무시했던데 대해 반성도 하게 됐다. 결국 덴마크 국민들이 우려하는 점에 대해 예외조항을 만들어준 뒤 재실시된 비준 투표에서 53대 47로 통과되었다. 이 예외조항에 의거하여 덴마크는 유로화 사용을 면제받았다.

분단국 통일의 경우에도 국민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실패한 경우가 있다. 1990년 예멘이 합의통일이 되었으나 1994년 재분단되면서 내전이 일어나 북예멘이 남예멘을 무력으로 통일했다. 남북 예멘은 냉전시대에 대립과 갈등을 지속하다 아랍연맹 등 주변국들의 중재에 의해 지도자들 사이의 통일 협상을 거쳐 1990년 냉전이 끝나면서 전격적으로 합의통일을 하게 되었다.

통일이 실패한 직접적 원인은 남북 예멘의 구 지도자들 사이의 정치적 주도권 싸움이었는데,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합의가 부족했기 때문에 아무런 저항 없이 재분단되었다. 국민들이 합의한 통일이었다면 정치지도자들 사이의 갈등이 있었더라도 통일국가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통일은 대박’이라고 나이브하게 주장하는 우리 정부에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 사회 내 기득권층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통일의 저해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통일 준비 단계부터 국민들이 합의하는 통일을 추구해야 한다. 통일 방안과 대북정책 등 통일에 대한 중요한 정책은 국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통일은 국민이 해야 하는 것이지 대통령이나 정부가 하는 것이 아니다.

김계동(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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