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의 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대박의 꿈, 통일 기사의 사진

통일 바람이 불어온다. 대통령이 직접 ‘통일 대박’을 운위했다. 약간은 통속적인 표현이지만 의지만은 사뭇 확고하게 느껴진다. 한껏 설레는 기대감을 담기에 이보다 좋은 말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좋은 카피다.

냉전시대, 통일은 그 어떤 단어보다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또 해석되었다. 급기야 1989년 북한을 방문한 임수경이 ‘우리의 소원’을 부른 이후, 숙연한 역사적 사명으로 떠받들어지던 이 명제는 때때로 그 어떤 말보다 불온하고 위험한 말로 간주되었다. 전 민족의 숙원이란 것에 누구도 이의가 없었던 말이 어느새 공공연한 금기어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통일이 구체적인 부피감을 가지고 다가온 것은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 시절에 이르는 10년 동안 대북정책이 일변하고부터다. 햇볕정책으로 명명된 이 정책은 부분적으로 문제가 없지 않았고 반대 여론 또한 만만찮았지만, 적어도 통일을 현실 담론의 장으로 다시 끌어왔다는 점에서는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고 정주영 회장이 소 떼를 몰고 방북하고, 개성 공단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데다 금강산 관광이 활황을 띠어 100만명 돌파 기념음악회가 열렸을 때, 더 이상 통일은 관념적이고 엄숙한 사명이 아니었다. 정치권의 무거운 구호 속이 아니라 생활 속으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반세기를 훌쩍 넘는 동안 통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많이 바뀌었다. 지금에 와선 차라리 남북이 갈라져서 사는 게 낫다는 분단고착론자도 나타났다. 반목과 오해, 도대체 다시 봉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심화된 이질성과 골 깊은 위화감, 통일 이후 일어날 분란에 대해 고착론자들은 근심 어린 경고를 던진다. 남한이 짊어져야 할 경제적 부담도 꼬집어 지적한다.

고착론자들의 우려를 이해한다. 그들이 던지는 현실적인 문제도 충분히 공감된다. 그러나 평생 없어지지 않을 흉터와 날씨만 궂으면 찾아올 통증이 두려워 잘린 팔을 내버려둘 바보는 세상에 없다. 분단의 후유증은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수십 혹은 수백 곱절 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서워 영원히 잘린 허리로 사는 길을 택하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짓이다.

지난 정부 말엽, 누차 통일 준비의 시급성이 제기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대통령이 직접 통일을 화두로 내걸고, 통일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직접 챙길 예정이다. 정부에서 이처럼 적극적으로 통일을 강조하고 준비 작업에 착수한 예는 일찍이 없었다. 반갑고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통일 대박론의 분명한 비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냉전시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있다.

통일에 있어 해법의 한 단서를 나는 동양의 화동론(和同論)에서 찾아보았다. 논어는 큰 정치의 정신을 ‘화합하되 동일함을 요구하지 않는다(和而不同)’로 제시한 바 있다. 화(和)가 조화의 정신이라면, 동(同)은 일률의 논리이다. 화가 과정에 무게 중심을 둔다면 동은 결과에 무게 중심을 둔다. 화가 다양성을 존중하는 관용과 공존의 방식이라면, 동은 힘으로 흡수하는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방식이다.

긴 세월 남과 북은 저마다 힘주어 통일을 외쳤다. 하지만 북한은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을, 남한은 경제력을 내세운 흡수통일을 주장한바, 양측 모두 동(同)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긴 마찬가지이다. 햇볕정책 역시 방법의 측면에서는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고 하나 동의 논리와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거시적 틀에서 보자면 달라진 것이 없다.

무엇보다 화(和)는 소통을 지향한다. 마음에 쳐진 철조망부터 걷고 소통해야 한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경제인들끼리 만나 교류하고, 학자들끼리 순수 학술 토론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대단한 시혜나 베풀어주는 듯이 진행하는 지금의 고압적 방식 대신, 전담 기구를 두어 상시적으로 만날 수 있게 기획되어야 한다. 전 방면에 걸쳐 소통의 채널을 넓혀, 마침내 보통 사람들끼리 만나 평범한 이야기를 하고 일상적인 여행도 가능해져야 한다. 이 속에서 피와 힘줄이 다시 통하고 뼈가 살아 붙을 수 있다.

이 어마어마한 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기야 하랴. 생각지도 못한 무수한 장애와 시행착오가 기다리고 있을 터이다. 그러나 이러한 긴 과정을 거친 뒤에야 통일은 논의되고 준비될 수 있다. 통일이 대박임엔 틀림없지만, 황금의 단 열매를 우리 시대에 단박 수확할 수 있으리라곤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두려워할 일도 아니고 언제까지나 미루어 둘 일도 아니다. 대박의 그날이 드디어 오면 역사는 오늘 우리 정부의 이 노력을 기억해줄 것이다.

아울러 이번의 논의가 단순히 막대한 통일 자금을 빙자해 세금을 더 걷기 위한 정치적 쇼에 그치지 않기를, 관련자들의 치적 수단으로 전락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빈다. “65년 동안이나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라니…. 부끄러운 일이에요. 이제 그만 좀 불렸으면 좋겠어요.” 노래의 작곡자 안병원 옹의 말처럼 더 이상 통일이 소원이 아닌 날이 오길 빈다.

이규필(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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