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보훈병원 이용할 수 있었으면…” 기사의 사진

“정부, 근대화의 역군인 派獨 광부와 간호사들 위한 정책 마련 서둘러야”

나라가 가난하고 힘없으면 백성들의 삶 역시 피곤해지기 마련이다. 반세기 전, 이역만리의 낯선 땅 독일에 보내졌던 우리나라 광부와 간호사들의 역사도 그 범주에 해당된다. 파독(派獨) 광부는 1963년 12월 21일 첫발을 디딘 이후 77년까지 7936명이었다. 간호사들은 66년부터 76년까지 1만1057명이 독일로 갔다.

63년 당시 우리나라의 각종 경제지표는 동남아의 필리핀에도 크게 뒤졌다. 실업률은 30% 안팎이었다. 1달러의 외화가 아쉬웠던 터라 국민들이 외화벌이를 위해 타국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던 상태였다. 독일의 경우 경기는 좋았지만,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청년층 비중이 낮아진데다 베를린 장벽으로 동독의 값싼 노동력 유입이 차단되면서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이렇듯 우리나라와 독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광부·간호사의 파견이 이뤄지게 됐다.

그들이 지하 1㎞의 막장에서 땀과 검은 먼지로 뒤범벅된 채 채광하면서도, 병원에서 변기 청소나 환자 용변 돕기 등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도 묵묵히 견뎠던 원동력은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였다. 그러면서 65년부터 10년간 1억1530만 달러나 조국으로 송금했다. 우리나라가 10억 달러 수출을 달성한 때가 70년임을 감안할 때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다. 독일은 우리나라에 차관까지 제공했다. 그들의 땀방울과 눈물 위에서 ‘한강의 기적’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64년 12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일 루르 탄광지대의 함본 광산에서 그들을 만났을 때의 일화는 유명하다. 다 같이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으나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나오더니 이내 ‘대한사람 대한으로…’란 구절에 이르자 울음바다가 됐다. 광부들은 물론 박 대통령 내외와 수행원들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박 대통령은 광부들에게 꼭 살아 돌아와 잘사는 나라, 조국근대화를 위해 다 같이 일하자고 격려했다. 근로자들은 힘을 얻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주 독일을 국빈 방문한다. 큰 관심은 박 대통령이 독일에서 어느 정도 구체화된 통일 비전을 제시하느냐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파독 광부·간호사들과의 만남도 눈여겨볼 만하다. 박 대통령과 광부·간호사들의 심경은 남다를 것이다. 50년 전, 박 대통령 아버지와 광부·간호사들이 함께 ‘눈물의 애국가’를 불렀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그 외 파독 근로자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이를 꼽자면 김황식 전 총리다. 그는 광주지방법원장 재직 때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78년 독일 유학 시절,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어려운 일을 감당했던 그들의 사연을 듣노라면 가슴이 아팠다.… 나라사랑, 가족사랑, 자기희생, 꿈의 실현과 좌절 등이 담겨 있는 그들의 사연을 우리의 자산으로 남겨야 한다.” 2010년 9월 총리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선 이 글에 대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현 청와대 홍보수석)의 질문을 받고 “그분들이 얼마나 고생했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이듬해 1월 광부·간호사 20여명을 총리공관으로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갖고 “여러분들의 공로가 잊혀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12월엔 ‘한·독 수교 130주년 기념 및 근로자 파독 50주년 기념 양국 우호협력 증진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결의안에는 ‘파독 근로자에 대한 정부의 정책 수립을 촉구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지금 정치권은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다. 정부는 규제혁파가 발등의 불이다. 파독 근로자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국가유공자 예우가 당장 어렵다면 보훈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게 그들의 희망이다. 탄광 생활로 인해 진폐증으로 고생하는 이가 적지 않다. 정부와 정치권은 정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그들의 평균나이가 벌써 75세쯤 된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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