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한·일관계사 전문가 정재정 서울시립대 교수 “위안부 문제, 정부 입장 정리 시급하다” 기사의 사진

한·일 관계가 1965년 수교 이래 최악이다. 두 나라 간 역사와 영토 문제가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의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앉긴 했으나 양국 최대 현안인 과거사 문제는 풀린 게 거의 없다. 일본군 위안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독도 영유권, 일본 교과서 검증 문제 등 양국 관계를 긴장시킬 수 있는 뇌관은 그대로다. 난마처럼 얽힌 한·일 관계의 개선을 위한 해법을 들어보기 위해 한국 근대사와 한일관계사 전문가인 정재정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를 만나봤다. 정 교수는 양국 정부가 지원하는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간사로 활동했으며,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을 지낸 국내 최고의 일본통이다. 그는 최근 한국과 일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명쾌하게 조명한 ‘20세기 한일관계사’(역사비평사)를 펴냈다. 인터뷰는 지난 20일 서울시립대 정 교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한일관계사 전문가로서 양국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에 대한 소회는.

“역사학자로서 두 나라 역사 문제가 정치·외교의 전면에 부상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한·일 관계를 다루는 여러 분야 사람들이 한·일 관계의 실상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대책 없이 공중전을 벌이고 있다는 인상을 갖는다. 서로간의 오해와 불신을 하루빨리 풀어야 한다.”

-다행히 미국의 주선으로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리는데, 한·일 관계에서 미국의 역할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것 같다.

“대단히 중요하다. 사실 미국이 현재의 전후 동북아 질서를 구축했기 때문에 책임도 있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이 번영과 평화를 함께 이뤄냈기 때문에 중국과 북한의 군국주의를 방어할 수 있었다. 미국으로서는 두 나라가 역사 문제로 싸우는 것을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아베가 한 발짝이라도 더 나가면 큰일 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본다.”

-양국 관계가 나빠진 주요 원인으로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에 대한 사죄 요구 발언, 일본의 지위 하락에 관한 언급을 꼽는 사람이 많은데 이에 대한 생각은.

“타이밍이 안 좋았다. 지금 동아시아 3국에는 세계사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청일전쟁에서 패한 아픈 역사를 가진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이른바 G2로 급부상했고,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한국도 새우가 아니라 돌고래 정도로 성장했다. 일본은 오랜 답보상태에서 벗어나 재기를 노리고 있다. 이런 판국에 한국의 대통령이 독도에 가니까 일본으로서는 호재를 만난 것이다. 일본 정치인들이 국민의 애국심을 부추기는 데 가장 좋은 소재가 바로 역사와 영토 문제다. 정치인들이 캠페인을 하다보니 독도의 의미를 잘 모르던 많은 일본인들도 자기 땅이라는 생각을 갖게 돼 버렸다. 이는 아베 총리의 재집권(2012년 12월)을 돕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왕에 대한 사죄 요구 역시 일본인들에게는 한국에 대한 맹반격의 구실이 됐다. 그런 분위기에서 아베 총리가 지난해 12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버렸으니 불을 지핀 격이 됐다. 원래 한·일 관계라는 것이 양쪽에 정권이 바뀌면 냉탕에서 온탕으로 가는 게 정상인데 지금은 그런 시스템이 고장 난 상태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왜 전문가들은 말리지 않았을까.

“외교부에서 말렸으나 청와대 차원에서 정무적 판단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독도 문제는 일본이 자꾸 도발하니까 우리가 강력하게 대응하기로 언젠가부터 방침을 바꾼 것 아닌가.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으니까 그냥 무시하는 게 옳다고 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과거사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는.

“한·일 수교협상 과정에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4년간의 협상 과정에서 우리가 일제 식민 지배에 대한 불법성과 무효성을 주장하면서 배상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은 한·일 병합을 합법적이며 합의에 의한 조약이라고 주장했다. 회담 막판에 청구권 교섭에 밀려 과거사 청산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결국 당시 한일기본조약에선 한국에 대한 일본의 침략과 지배를 명시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일본의 반성과 사죄도 반영되지 않았다. 한·일 병합과 관련해 ‘이미 무효다’라는 어정쩡한 문구를 삽입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1950년대와 60년대 한·일 수교 협상은 미국의 영향력과 남북분단 등 여러 한계가 있었다. 어쨌든 이후 과거사 문제가 기본조약의 틀 속에서 논의될 수밖에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언젠가 북한이 일본과 수교할 때 과거사 문제가 진전될 수 있다고 보는가.

“큰 틀에서는 한·일 기본조약과 같을 거라고 본다. 2002년 김정일과 고이즈미가 발표한 ‘평양선언’에 답이 있다. 평양선언에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발표한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내용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우리나라가 한때 한국 국민에게 식민 지배를 통해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던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진심의 사죄를 표한다’는 내용이다. 일본과 북한이 수교할 경우 이 정도 진전된 내용을 담을 수는 있겠지만 일본이 법적 책임을 진다는 식의 양보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일본이 1990년대에 들어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수교협상 때보다 유연하게 바뀐 이유는 뭔가.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93년)와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를 담은 무라야마 담화(95년) 정도만 유지한다면 양국 관계를 발전적으로 끌고 갈 수 있지 않겠는가.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경제력이 세계 2위로 부상하면서 일본 국민들의 역사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한국이 너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보통의 일본인들을 화나게 할 필요는 없다. 한국이 옳은 얘기를 해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일부 조성되고 있다.”

-아베 총리가 고노 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진정성이 있다고 보는가.

“일본은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적어도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는 계승할 것으로 본다. 계승하지 않을 경우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비판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국내에서도 상당한 비판을 받을 것이다. 아베 총리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당장 자기를 지지하는 우파 세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입맛을 맞추고 있을 뿐 결국엔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고 돌아와야 한다.”

-위안부 문제는 국제적으로 여성인권 문제로 부각돼 우리한테 유리한 상황 아닌가.

“그렇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 전쟁 지역이 있고 그곳에서 성폭력이 일어나기 때문에 중요한 화두가 돼 있다. 그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에 일본으로서도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다만 일본으로서는 팩트(사실관계)가 왜곡되는 데 대해 억울함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위안부가 20만명이 넘는다든가, 백주에 납치하다시피 데려갔다는 식의 얘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위안부 문제는 우리 정부의 정확한 입장이 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다.

“옳은 지적이다. 우리 정부는 당초 이 문제가 국제법에 반하는 중대한 불법행위로서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이 존재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김영삼정부는 금전적 배상을 주장할 경우 소모적인 논쟁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한국 정부 차원에서 피해자 구제 조치를 취하는 한편,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배상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밝혔다. 김대중정부도 정부 차원의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촉구했다. 아울러 ‘아시아여성기금’ 같은 일본 정부의 대책을 양해했다. 그런데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민간단체가 일본 정부 조치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자 우리 정부가 동조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문제는 고령의 할머니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은 이 부분에 대해 한국과 일본이 긴밀하게 협의해야 한다. 그 이전에 우리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정하는 게 정말 중요하고 시급하다. 곧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올 텐데 그럴 경우 우리 정부가 곤혹스러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는 한·일 간 인식차가 너무 큰 것 같다. 해결점이 있다고 보나.

“일본 정치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는 집단적 자위권 구사와 헌법 개정 등을 통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변신하려는 원대한 야망이 깔려 있다. 그런데 이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가 중국과 달리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실 중국은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도 괜찮다. 그곳에 합사돼 있는 A급 전범이 중일전쟁 이후 죽은 일본 군인이다. 당시에 우리는 식민 지배 상태였기에 중국과는 사정이 다르다. 그보다 우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는 2만1000명의 한국인 문제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그들이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 그들이 강제로 일본군으로 전쟁에 끌려갔다 죽었는데 왜 일본 정부의 원호 대상이 되지 않는지를 따져야 한다.”

-일본 교과서가 점차 우파 시각으로 개편되고 있어 해마다 논란이 일고 있는데.

“정말 걱정되는 부분이다. 아베 총리 집권 후 교과서 검증 기준에서 ‘근린제국조항’을 폐지하자고 진언한 우파 인사를 문부과학상에 임명했다. 때문에 양국 간 교과서를 둘러싼 갈등은 완화되기는커녕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독도에 관해 기술하면서 ‘시마네현 다케시마’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한국이 다케시마를 일방적·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다’고 표현한 교과서가 많이 늘고 있다. 반면 위안부에 대한 기술은 점점 줄고 있다. 미래 세대 교육에 관한 것이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 싶다.”

-원폭 피해자 치료와 사할린 한인 귀국 문제는 일본이 성의를 보이고 있다고 봐야 하나.

“우리 정부는 이 두 가지의 경우 위안부 문제와 더불어 한·일 수교 협상에서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해결 과제임을 선언해 놓은 상태다. 일본은 수교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노력을 한 게 사실이다. 인권 문제로 부각되면서 국내로 귀환한 원폭 피해자를 일본으로 데려가 치료해주는가 하면 사할린 한인들의 귀국도 많이 돕고 있다. 그 부분은 평가해줘야 한다.”

-위안부 문제도 그런가.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지원도 일본 민간에서만 한 것이 아니다. 일본 정부 예산도 많이 들어갔다. 이 문제에 관한한 우리 정부의 입장 정리가 중요하다.”

-미래의 한·일 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는가.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유지하게 하는 운명공동체다. 동아시아에서 자유 민주 평화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북한이나 중국처럼 1인 지배와 군국주의를 따를 수는 없지 않은가. 두 나라가 긴밀히 협력해 상호 국익을 지켜나갈 경우 이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간섭을 막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두 나라 간 과거사 문제를 다음 세대에 미루기보다 현 세대가 해결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

정재정 교수 약력

△충남 당진(63)

△대전고

△서울대 역사교육과, 도쿄대 석사, 서울대 박사(국사학과)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한일관계사학회 회장

△일본 도호쿠대 객원교수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간사

△서울시립대 대학원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현)

만난 사람=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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