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유재웅] 1차대전 100주년의 교훈 기사의 사진

올해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1914년 6월 29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는 육군 대연습 임석차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일요일이었던 이날 오전, 세르비아의 반오스트리아 비밀 결사 조직 소속이었던 18세의 대학생 가브릴로 프린치프로의 총탄에 황태자 부부는 암살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촉발시킨 ‘사라예보’ 사건이다.

오스트리아는 범인이 세르비아인이라는 이유로 사건 발생 한 달 후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했다. 오스트리아와 당시 정치적으로 대립해 있던 프랑스와 러시아는 즉각 총동원령을 내렸다. 오스트리아와 조약을 맺고 있던 독일은 이에 맞서 러시아에 동원령 취소를 요구했고, 묵살당하자 러시아를 향해 선전포고했다. 독일은 프랑스가 중립을 지키지 않자 프랑스에 대해서도 선전포고했다. 사태를 관망하던 영국은 동맹관계에 있던 벨기에가 침공당하고, 도버해협에 면한 벨기에 항구들이 독일 수중으로 떨어지면 불리하다고 판단,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순식간에 유럽은 전쟁터로 변했다.

전선은 유럽에 그치지 않았다. 전쟁발발 초기 영국과 독일 사이에서 중립을 취하던 미국은 독일의 잠수함 유보트의 무제한 공격으로 자국민과 상선이 피해를 입자 1917년에 독일을 향해 선전포고했다. 이 틈을 노려 일본은 영일 동맹을 근거로 연합군 측에 가담해 이득을 취했다. 1914년 8월에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일본은 아시아 지역 내 이권을 넘겨받는데 영국과 프랑스가 승인하는 조건으로 상징적인 소규모 함대를 지중해에 파견했다. 그러면서 중국에 있던 독일 조차지인 산둥반도의 자우저오만, 태평양의 독일령 남양 군도를 점령하였다.

약 2000만명의 희생자를 낸 제1차 세계대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당시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진리는 ‘국익’ 앞에는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으며, 국력이 약하면 언제든지 강대국에게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요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전격 합병함으로써 전 세계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러시아의 군사 팽창주의에 맞서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정면 대립하는 형국이다. 신 냉전으로 국면을 분석하기도 한다. 북한을 자극해 북핵 문제 해결에 먹구름을 드리울 것이라는 우려도 워싱턴 등에서 제기되고 있다.

한반도는 세계의 화약고로 불릴 만큼 남북이 팽팽한 긴장 속에 대치해 있다. 이를 확인이라도 시켜주듯이 헤이그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리는 때에 맞춰 북한은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긴장을 유발하고 있다. 일본 역시 아베 정권 들어 국수주의를 노골화하면서 동북아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일본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손을 잡고 실리를 취했듯이 지금은 미국과 손을 잡고 동북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는 형국도 읽혀진다.

위기관리의 최선은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사례에서 보듯이 국제 역학관계는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갈 수 있다. 더욱이 한반도는 돌발사건 하나로 언제든지 ‘열전(熱戰)’으로 비화할 수 있을 만큼 위기의 한가운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지방선거 등 국내 이슈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우리의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과 준비가 철저해서라면 다행이지만, 크고 작은 위기가 일상화되어 둔감해 있는 것이라면 여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10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지만 우리의 외교력과 국력을 키우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음 달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방한한다. 복잡 미묘한 동북아 정세 속에서 우리의 외교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유재웅(을지대 교수·홍보디자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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