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승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기사의 사진

얼마 전 교계의 한 지도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한국사회는 두터운 보수층이 이끌어 왔는데 최근 정치권과 사회보수층이 개신교에서 등을 돌리려고 한다. 그 이유는 사분오열된 개신교에는 구심점이 없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협력할 상대를 누구로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여론 주도층이 거대한 보수의 흐름을 이끄는 주도세력에서 개신교를 배제하려 한다고까지 했다.

실로 충격적인 진단이다. 한국사회에는 개신교 가톨릭 불교 등 종교보수층과 일반사회의 보수 세력이 거대한 보수의 물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개신교는 그 물줄기의 중심이었다.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인 세력으로 정치권과 사회보수층으로부터 협력자나 파트너로 큰 역할을 해 왔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교회는 사회로부터 점점 외면당하고 있다. 개신교 130년 역사상 교회가 이처럼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분위기에 빠진 적이 없다. 선교 초기 높은 지식과 교육 정보 의술을 통해 정부와 사회를 이끌었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섬김과 나눔, 봉사로 존경을 받았다. 나라가 일본에 침탈당하고 민중이 도탄에 빠졌을 때 분연히 일어나 독립운동을 하고, 교육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희망을 심어준 곳이 교회였다. 고종의 명을 받고 헤이그에 밀사로 파견된 이준 열사 등도 개신교 신자였다.

개신교에 등 돌리는 보수층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외국의 원조와 지원을 이끌어낸 곳도 교회였고,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새마을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친 곳이 교회였다. 민주화운동을 이끌었으며 노동 현장에서 인권을 위해 노력한 곳도 교회였다. 북한교회를 지원하며 평화통일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온 곳도 교회였고,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의 친구가 되어 온 곳 역시 교회였다.

그런 한국교회가 왜 사회 주도세력에서 밀려나고 있는가. 교회의 대사회적 봉사 섬김 나눔의 공헌도는 늘었는데도, 왜?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들이 지난 몇 년 사이 교회에서 급격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을 교회 밖으로 끌어내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과 역사와 권위를 무너뜨리고, 사회법정에 고소고발하고, 연합과 일치를 깨트리는 언행들이 자행되어 왔다. 돈과 권력의 헤게모니 싸움이 끊이지 않고, 세속에 무기력해 가고 있다. 어떤 교단은 몇 년째 대표를 뽑지 못한 채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고, 연합기관들은 예수님 앞에서 ‘누가 크니이까?’라고 했던 제자들처럼 서로 크고 잘났다고 야단이다. 겸손과 온유와 사랑을 기독교의 표지라고 자랑하면서도 지도자로 자처하는 사람들 누가 겸손과 온유와 사랑을 자랑할 수 있는가. 거짓과 교만으로 상대의 흠을 잡아 정치적으로 살상하고, 하나님보다 앞서 심판자가 되어 물고 찢으니 일반 사회는 이런 교회와 개신교를 멀리하는 게 당연하다.

회개하고 돌아서자

오는 8월 교황의 한국 방문 뒤에 수많은 청년과 성도들이 가톨릭으로 이동할 것이며, 사회를 움직이는 보수의 주도 세력이 가톨릭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교회여, 사순절 기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회개하고 돌아서자. 교만한 눈, 거짓된 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언과 형제를 이간질하는 행위(잠 6:16∼19)에서 돌아서자.

이승한 종교국장 s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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